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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숫자쟁이 Nov 14. 2023

퇴사자 3인의 회고 모임

우리는 모두 지난 5월에 권고 사직을 받았다. 회사의 경영난이 이유였다. 전도 유망한 스타트업에서 즐겁고 유익하게 일하고 있었던 우리들은 모두 짐을 싸서 나왔고 각자 휴식의 시간을 보냈다. 퇴사 이후 집중이 잘 되지 않는 것은 나만의 현상이 아니었던건지 우리는 모처럼 모여서 회고의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우리가 좋아하던 만리재에서 만났다. 공간대여를 활용하니 뭔가 더 아늑하고 집중된 느낌을 받았다. 회고를 하기로 한 것은 잘 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고의 방식은 간단했다. 지난 두 달간 생각했던 일, 시도했던 일들을 위주로 나누고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를 공유한다. 나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었고 그런 생각들에 대해서 종종 의심하곤 했다, 이야기를 하는 것의 장점은 나를 오히려 스스로 더 관대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하고 나서 사람들이 귀기울여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나는 나의 생각들을 이야기할 만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는 점이다. 


퇴사하고 나서 무엇이든 할 것 같았고 자유로운 발리 여행에서 행복하게 보내기도 했지만 한국에서 돌아온 뒤에는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에서 시작된 나의 이야기. 나는 종종 핸드폰으로 기사를 읽곤 하는데 이것은 마치 중독이 된 것처럼 잘 멈추어지지 않는다. 나는 신문 기사를 읽을 때에도 주로 정치 뉴스를 무척 좋아하는데 이것은 과연 내가 좋아해서 읽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을 하고 싶지 않아서 회피하려고 읽는 것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나의 습관을 안 좋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좋아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읽는 것이니깐.


그리고 나는 발리 여행에서 그 기간만큼은 정말 자유롭고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이유는 한국에 돌아가는 날까지는 적어도 아무 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루 종일 운동을 해도 되고 운동을 하다가 잠을 자도 되고, 이것 저것 식당이나 카페를 구경 다녀도 좋았다.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게 존재하지 않았다. 실제로 나는 코딩 공부도 거의 하지 않았고 그 시간을 그저 즐기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돌아오는 날 전날까지는 무척 즐거웠고 실제로 잘 먹고 기분도 매우 긍정적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나의 본 모습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서는 이것저것 불안함 마음이 많이 들었다. 취업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고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일에 자주 생각이 쓰이곤 했다. 무엇보다도 즐거움을 가지고 에너지가 넘치는 생활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이 회고를 통해서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꼭 커리어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지난주부터 내가 명상 센터를 가도 될까 하는 의문이 이제 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바뀌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된다. 나는 지금은 무엇을 해도 된다. 왜냐면 이러한 시간은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지금 원하는 것들은, 내가 과거에 좋아한다고, 잘 한다고 말해왔던 것과는 달라도 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하고 싶은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생각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 시간이 되는게 정말 나와 가까운 것이다. 그것이 명상 수행이든, 기사를 검색해보는 것이든, 프로그램을 연습하는 것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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