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박은
물을 긷는 것이 아니라
우물의 깊이를 부른다
우물은 말이 없고
밧줄만
오래 생각한다
내려갈수록
빛은 가벼워지고
어둠은
점점
물의 이름을 닮는다
빈 통은
늘 먼저 내려간다
가득 찬 것은
아무 데도 닿지 못한다
두레박은
세상을 끌어올리지 않는다
다만
아래에 있던 것을
잠시
빛으로 데려온다
오래된 우물가에는
기다림의 자국이 남아 있다
사람들은
목마를 때만 찾아오지만
물은
이미 오래전부터
조용히
위로 오르고 있었다
삶의 깊은 순간마다
스스로를
한 번쯤
내려보내야 한다는 걸
그 깊이를 아는 것은
두레박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