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늘이 조금 덜 아프기를
그날은 유난히 조용했다.
아니, 세상은 평소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분주했지만 내 안에서는 모든 소리가 멈춰버린 듯한 날이었다.
잔잔함 속에 숨겨진 무게감이 참으로 묘했던 것 같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온몸이 짓눌리는 듯한 그 숨 막히는 압박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허함이 목까지 차오르기도 했다.
눈은 떠있지만 내가 살아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바로바로 정리하고 치우고 청소하는 내 성격과는 많이 다른 날.
테이블 위에 정리되지 않은 책과 노트들, 싱크대 안에는 다 마신 빈컵과 식기들이 그대로 놓여 있고 세탁기에는 아직 돌리지 않은 빨랫감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일상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내가 멈췄을 뿐이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알고 있어도 아는 체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가족이 집으로 오면 나는 아프지 않은 척 오늘은 컨디션이 좋은 척 어설픈 연기를 한다.
내가 아프고 난 후 생각해 보면 우리 가족은 서로를 배려하느라 완벽하지 않은 어설픈 연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진통제주사도 통증이 잡히지 않아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게 될 때면 가족들이 보지 않도록 얼른 안방 화장실로 가서 표정을 지운다.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절망이 자리 잡은 지 한참 됐을 무렵이었다.
더 이상 괜찮은 척 연기하는 것조차 힘들었던 그날 나는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끝을 생각했다.
그날의 감정은 슬픔보다 무감각함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그 감정이 무서우면서도 이상하게 편안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사랑하고 있는 것들조차 아픔에 짓눌려 희미하게 느껴질수록 혼자만의 결심은 더더욱 구체화됐다.
죽음을 결심했던 그날은 엄마가 택배로 보내주신 고추장, 된장, 잘 손질해서 소분돼 있는 내가 좋아하는 생선과 반찬들이 도착한 날이었다.
이 큰 택배싱자안에는 먹거리뿐 아니라 나에 대한 엄마의 걱정, 사랑이 함께 들어있고 부모가 되었어도 여전히 엄마의 커다란 사랑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음을 느끼기도 했다.
이날은 죽음을 생각한 날이기도 했고 동시에
내가 다시 살기로 결심한 날이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고 여전히 고단하다.
남들은 가볍게 지나치는 하루가 나에게는 숨 고르듯 조심스럽고, 간절하다.
아픔이 나의 전부를 정의하진 못하지만 내 삶의 일부로 늘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는 여전히 웃을 수 있는 따뜻함이 있고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있는데 때론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나는 전혀 괜찮지 않음’을 품고 있기도 하다.
나의 일부로 받아들인 고통도 언젠가는 지나갈 거라고 기대해 본다.
때론 가장 깊은 절망이 가장 조용한 희망을 낳는다는 기적 같은 일을 희망하면서.
그래서 나는 엄마의 택배 속 숨은 사랑을 잊지
않기 위해, 또 자식을 향한 그 위대한 사랑을 배반하지 않기 위해 오늘을 산다.
아주 감사하게, 그리고 그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단단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