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살이

by 소원상자

자명종보다 먼저
윗집 물 내리는 소리에 눈을 뜬다
여기서는
아침이 위에서 내려온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은 잠깐 멈칫하다가
마지못해 흐른다
내 이름을
끝내 부르지 못한 사람처럼

식탁 위의 컵은
밤새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비어 있고
나는 그 앞에 앉아
한동안 아무것도 따르지 않는다

이 시간
어딘가에서 먼저
의자가 한 번쯤 밀렸을 것 같아서

택배 상자에는
내 주소가 또박또박 적혀 있는데
나는 그 글씨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창밖의 나무는
계절을 틀리지 않는데
나는 자꾸
한 박자 늦는다

저녁이 되면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정확히 사라지고
나는 내가 머무는 곳으로
대충 돌아온다
돌아온다는 말이
이렇게 느슨한 동사인지
여기서 알았다

밤에는
멀리서 들리는 소리들이
모두 한쪽 방향에서 온다.
자동차일 수도
바람일 수도 있는데
귀는 끝내
그쪽만을 남겨 둔다

잠들기 직전
몸이
여기엔 없는 자리를 더듬다가
천천히 멈춘다

그래도 아침이 되면
신발은 제자리에 있고
나는 그 안으로
다시 발을 넣는다

끈을 매는 동안
조금 늦춘다

문을 나서기 직전까지
아직 남겨 둔 자리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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