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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재 (不在 )

by 소원상자

살다 보면 어떤 자리는 영원히 비워져 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누군가 떠난 자리, 혹은 무언가 사라진 공간은 그 자체로 말없이 무게를 가진다.

사람들은 흔히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 ’고 하지만 나는 부재 앞에서 시간이 늘 무기력하다고 느낀다.




어떤 날에는 ‘있음’보다 ‘없음’이 더 크게 느껴질 때도 있다.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데도 마음속을 휘감고 흔드는 것, 그것이 바로 ‘부재’ 다.

나는 종종 부재를 ‘차가운 온기’라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의 부재는 마치 그 사람이 남기고 간 체온처럼 공간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익숙하게 들리던 발자국소리, 문을 열던 손길,

말없이 마음을 채워주던 눈빛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를 쓸쓸히 울린다.

마치 소중한 책갈피를 잃어버린 책처럼 읽고 있던 페이지는 그대로인데 어디부터 다시 읽어야 할지 방향을 잃은 느낌.




가장 아프게 다가오는 부재는 물리적인 거리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에서 비롯된다.

곁에 있어도 마음이 떠나 있다면 그 부재는 더욱 뚜렷하게 다가온다.

말 한마디가 쉽게 전해지지 않고, 눈빛이 미묘하게 어긋날 때 우리는 곁에 있어도 서로를 그리워하게 된다.




하지만 모든 부재가 슬픔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부재는 새로운 자각을 불러온다.

누군가가 없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되는 감정이 있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얼마나 특별했는지를, 그 사람이 내 삶에 얼마나 깊이 스며있었는지를.

그래서 때론 부재의 모습은 고마움의 얼굴을 하고 찾아오기도 한다.




부재는 때로 기다림이 되기도 하며, 다시 만날 날을 향한 간절함, 그 시간 속에서 피어나는 그리움과 사랑이기도 하다.

그런 감정들이 나를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든다.

부재는 끝이 아니라, 조금 다른 형태의 동행일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도, 이미 내 곁에 없는 그들은 동시에 나와 함께 있다고 느낀다.

마음이라는 조용한 공간 속에서.




그렇게 나는 ‘부재’가 항상 극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과 그것은 단지 사라짐이 아니라, 없음 ’에 익숙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을 안다.

그리움이 만들어준 마음속의 한 공간, 비워진

그 자리에 나는 기억을 앉히고 후회를 놓고 사랑을 다시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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