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사라져도 기억은 영원하다
우리 엄마는 재개발 아파트에 산다.
사람들은 그곳을 ‘곧 헐릴 집’이라고 말한다. 부동산에서는 평수와 시세만으로 값을 매기지만, 내게 그곳은 한 사람의 세월이 눌러앉아 있는
작은 우주다.
거실 벽의 금은 열심히 살며 하나씩 새겨진
엄마의 주름살과 많이 닮아 있다.
그 틈새로는 여름의 끈적한 습기와 겨울의 찬바람이 스며들지만, 엄마는 불평 대신
“ 아직은 괜찮다 ”라며 웃어넘긴다.
주방이라 하기 다소 애매한 작은 부엌의 낡은 싱크대와 오래된 가스레인지 위에는 수십 년 동안의 끼니를 준비한 수고스러움과 감사함이
밥상 위로 모여 포개져 있는 듯하다.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에도 기억이 스며 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계단으로 올라갈 때마다 힘겹게 켜지는 희미한 불빛이 푸석푸석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곧 ‘살아 있음의 풍경’이다.
언젠가는 철거 통보서가 붙을 것이다.
그 붉은 글씨 앞에서 사람들은 이주할 집을 걱정하고, 더 나은 조건을 따질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순간이 곧 엄마의 얼굴을
한 번 더 새겨 넣는 일처럼 느껴질 것 같다.
집은 사라져도 엄마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우리를 부르는 듯할 테니까.
도시는 오래된 것을 밀어내고 새로운 것을 세우는 일에 익숙하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건 콘크리트가 아니라, 그 안에 살았던 한 사람의 생, 그 시간을 버티고 지켜낸 마음이다.
그래서 나는 재개발 아파트를 떠올릴 때, 낡은 집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묵묵히 삶을 지어 올린 우리 엄마를 떠올릴 것 같다.
엄마가 곧 집이고, 그 집이 곧 나의 기억이며, 나는 그 기억으로 살아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