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by 소원상자

유제품에는 날짜가 찍혀 있고
약에는 주의사항이 붙어 있는데
사람에게는 아무 표식도 없다.
그래서 아직 괜찮다고 믿으며
조금 상한 마음을 냉장고 가장 안쪽에

넣어 둔다.


사랑도 그렇다.
유통기한을 확인하지 않은 채 계속 흔들어 마신다.
살짝 상한 맛이 느껴져도 “원래 이런 맛이었지”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어떤 말은 너무 오래 묵어 꺼내는 순간
방 안의 공기를 탁하게 만든다.
사과는 타이밍을 놓치면 변명이 되고
안부는 늦어지면 관심이 아니라 호기심으로 오해받는다.


나는 아직 쓸 수 있을 것 같은 오늘을 들고
이미 기한이 지난 내일 앞에 선다.
버리기엔 아깝고 먹기엔 망설여지는 마음.

하지만 모든 유통기한이 아쉬운 건 아니다.
상한 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
오늘의 나에게 아직 하루가 남아 있다.
조금 더 일찍 웃고 미루지 말고 말하고
상하기 전에 살아야지.


인생은 냉장 보관이 되지 않으니까.

작가의 이전글어느 유기견의 독백-번호로 불린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