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수업 시간에 ‘희망사항’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이렇게 적었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그 말이 내가 아는 가장 안전한 희망이자, 동시에 가장 어려운 목표라는 사실을 그때는 희미하게만 알고 있었다.
내가 떠올린 ‘좋은 사람’은 거창한 존재가 아니었다. 울고 있는 사람의 이유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 이기고 나서도 상대를 돌아 봐주는 사람, 부드럽게 말하되 진심이 흐려지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세상에 하나쯤 더 있으면 좋겠다고, 가능하다면 그게 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나는 그저, 세상을 조금 덜 아프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 문장이 얼마나 막연하고도 어려운 목표였는지를.
좋은 사람이 되는 일에는 합격선이 없었다.
기준은 늘 흔들렸고, 상황은 끊임없이 나를 시험했다.
침묵해야 할 때 말했고, 말해야 할 때 침묵했으며 편해 보이는 선택 앞에서 양심을 외면한 순간도 있었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기엔 자주 피곤했고, 쉽게 타협했다. 선함은 생각보다 체력을 요구했고,
나는 강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삶은 나를 다시 그 희망사항 앞으로 데려다 놓는다.
다친 친구의 짐을 나눠 들어주거나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한 뒤 괜히 마음이 가벼워지는 순간, 잘못을 인정하고 나서야 잠들 수 있었던 밤, 손해라는 걸 알면서도 외면하지 않았던 선택들.
그것들은 대단한 결심이라기보다, 지나고 나서야 의미가 남는 작은 순간들이었다.
조금 덜 이기적으로 살고자 하는 반복된 결심들. 삶이 나를 거칠게 다룰수록, 나는 더 자주 그 문장을 떠올린다.
돌아보면, 그 아이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말 대신 자신을 먼저 단속하겠다고 적어 놓은 셈이었다. 그것은 순진함이라기보다, 제법 야무진 각오였다.
세상을 구하겠다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세상에 상처를 덜 남기고 싶었던 아이.
나는 아직도 그 문장을 목표로 삼아 살고 있다. 여전히 부족하고, 자주 흔들리며, 때로는 실패한다. 그럼에도 희망사항으로 적었던 그 한 문장은
내 삶을 비추는 기준으로 남아 있다.
그 문장을 버리지 않는 한, 나는 계속 그 방향으로 걷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