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비춰준 한낮의 종종거림, 분주히 나를 스쳐가던 사람들, 웅성거리던 세상의 모든 목적 없는 소음도 하나둘씩 조용히 잠들고 가라앉은 저녁, 이제 나는 비로소 마음 깊은 곳의 나와 마주한다.
테이블 위에 올려둔 따뜻한 차 한잔을 두 손 모아 감싸 잡자 무언가에 쫓기듯 정신없이 복잡하게 엉켜있던 내 마음들도 사라진 말들과 남겨져 있는 마음을 안고 잔향을 풍긴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창문을 살짝 건드리고,
바람에 커튼이 조용한 음악처럼 흔들릴 때
나는 이 고요 속에서 안도한다.
문을 닫으면 세상의 소음과는 멀어지지만
집이라는 품 속에서 나는 다시 ‘나’로 돌아올 수 있다.
이 작은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집, 돌아갈 이유가 필요 없는 곳
누군가에게는 집이 머무르는 공간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책임이겠지만 내게 집은
나를 존재하게 하는 이유이다
오늘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는 이 집안에서
가장 나다운 나를 만난다.
나는 매일 조금씩 지치지만, 지친 만큼 매일
이 집에 기대고 위로받는다.
소담하고 조용히 가라앉은 하루의 끝에서
나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집, 내가 울거나 좌절하고 슬퍼해도,
기대고 또 기대도 적당한 어둠과 고요의 깊이로 나직이 나를 받아주는 곳
일에 나를 파묻어 내 마음을 제 때 돌보지 못한 시간을 잘 묶어놓았다가 잠시나마 나는 이곳에서 차분히 숨을 고른다.
이곳에는 나를 나답게 존재할 수 있게 하고
하루를 사느라 미처 돌보지 못한 내 마음을 토닥토닥 다독이며 안아주는 세상에서 가장 포근하고 작은 위로들이 있다.
이곳에 내가 있어, 나에게 이곳이 있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