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연주를 맡았다.

핸드팬을 아시나요?

by 이슬노트

일요일 연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연습실은 1시부터 7시까지 오픈이고, 햄릿들은 4시부터 모여 함께 연습하기로 했다.


오전일을 마치고, 숨좀 돌리던 중 햄릿들 맏언니 지구소풍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브런치전시가 마지막날이라는 것이다. 한번 가봐야지 하다가 잊고 있었는데, 세종문화회관과 멀지 않은 서촌이어서 얼른 들러오라고 조언을 해주셨다. 허겁지겁 외출준비를 마치고 서촌으로 향했다.

언젠가 내 이름도 전시장 한편에 자리 잡는 그때를 기약하며 빠르게 관람을 마치고 연습실로 향했다.


각자 시끌벅적하게 연습을 하고 있을 거란 예상을 깨고 테이블에 다들 앉아 다소 무거운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자리가 마땅치 않아 김신기 선생님 옆에 조용히 앉았다. 옆에 있던 햄릿 8 이 각자 맡은 역할에 대해 분석한 의견을 얘기하고 있는 거라고 알려준다. 주요 배역 이야기는 지나고, 버나드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햄릿들 차례가 되었다. 는 '가 맡은 햄릿 5의 어색한 대사를 살리려면 미치거나, 취해야 할 것 같다'라고 얘기했다. 김신기 선생님은 같은 생각이라며 취하는 것에 힘을 실어주셨다.

이제 취한 연기를 하면 된다고 생각하자 무거운 짐 하나가 덜어진 기분이 들었다.


악기연주할 사람이 햄릿중에 필요하다고 얘기하던 중 김신기 선생님께서 바로 옆의 나를 쳐다보시자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입이 열렸다.

"제가 해보겠습니다."

내가 요즘 그렇다. 들어오는 제안을 거절할 줄 모르고 덥석덥석 받고 있다. 먼저 하겠다고 절대 나설 성격이 아니니, 시키는 거라도 해야 지금보다 더 다양한 경험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체리딩을 하고, 금세 7시가 되어버려 연습을 마쳤다. 햄릿들끼리 저녁회식을 했다. 햄릿들은 어쨌든 주요 배역에서는 떨어진 탈락자들의 모임이다. 아쉽기도 하지만, 우리는 주요배역 옆에서 다양한 역할로 극을 풍성하게 하는 만큼 정말 바쁘게 무대를 활보할 것 같다. 서로에 대해,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장면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내가 연주하게 될 악기는 핸드팬이다.

​핸드팬은 21세기 초 스위스에서 발명된 비교적 현대적인 악기다. UFO나 거북이 등껍질을 닮은 독특한 외형을 가지고 있으며, 두 개의 얇은 강철판으로 만들어져 있다. ​손가락이나 손바닥으로 두드려 소리를 내는 타악기이지만, 멜로디를 연주할 수 있는 선율악기이기도 하다. 소리가 몽환적이고 신비로워서 명상음악에 많이 쓰이고, 요가나 명상가들이 배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진출처:디지바이브


월요일. 정규수업날이다.

평상시보다 더 일찍 가서 핸드팬을 두들겨보았다.

유튜브에 기초강좌가 있어서 강의를 듣고 악기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영상에서처럼 맑은 소리가 잘 나지는 않아서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전체리딩 때 모두 서서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술 취한 연기를 하는데, 뭔가 많이 어색한 것 같다. 술 취해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호주에서 역마살 남자와 와인 마시고 취했던 날. 그때가 마지막이었나...

악기연주가 들어가는 장면에서는 핸드팬을 그냥 막 두들겨봤다. 들을수록 소리가 신비롭다. 전문연주자들의 연주 영상을 보니,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 연극을 하게 된 게 어쩌면 핸드팬을 만나기 위함이었을까..

무대에서 공연을 하던 스무 살 초반의 내가 생각났다.

대학 때 아는 오빠 권유로 밴드동아리에 들어갔었다.(키보드 멤버를 못 구하고 있다고 한번 해보라고 해서..) 나는 신디사이저(키보드)를 연주했는데, 멤버들 각자 연습하고, 합주할 때의 묘한 매력을 지 못한다. 그리고 무대에 설 때의 그 떨림과 흥을 기억한다. 음악에 빠져들어 멤버 전체가 하나가 되는 그 기분을 잊을 수 없다.

어쩐지 나는 핸드팬이라는 이 악기를 계속 연주하게 될 것 같다는 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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