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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다의 작은섬 Oct 15. 2022

내 속에 선과 악「반쪼가리 자작」

완전한 선과 악(2022.8.31. 수)

사진출처:채원


  

『그 무렵 외삼촌은 갓 청년기에 접어들었다. 선과 악이 뒤섞인 막연한 감정들이 혼란스럽게 터져 나오는 시기였다. 그 나이에 우리는 새로운 모든 경험, 무시무시하거나 비인간적인 경험까지도 삶에 대한 불안하면서도 따뜻한 애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반쪼가리 자작 7p 이탈로 칼비노)     



메다르도 자작은 종교 전쟁에 참전했다가 첫 전투에서 대포 포탄을 정면으로 맞아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 사고를 당합니다. 작가  ‘이탈로 칼비노’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글을 쓴 것 같습니다.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 사고를 당했지만 자작은 죽지 않고 살아있니까요.


책을 읽고 기록하고 싶은 문장이 많지는 않았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긴 했습니다.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단숨에 읽었습니다.


‘도대체 자작은 죽는가? 사는가?’ 그것이 궁금하도다! 





『메다르도의 사악한 반쪽이 돌아왔어. 오늘 재판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구나.』

(반쪼가리 자작 31p 이탈로 칼비노)     


전쟁에 참전하자마자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 사고를 당하고 집으로 돌아온 메다르도, 모든 사람들이 반쪼가리가 된 메다르도를 보며 놀라지만 유모 세바스티아나만이 장애를 가지 몸보다 사악한 반쪽이 돌아왔다고 말하며 걱정하죠.


사악한 반쪽

사악한 반쪽 자작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과일이며 개구리, 버섯, 나무 등을 모두 반쪼가리를 만들어 버립니다. 반쪼가리 버섯들 중 독버섯만 골라 조카에게 줍니다. 튀겨먹으라고..

 

유모의 말처럼 자작의 내면에는 사악한 반쪽만 남아있어서 일까요? 자작은 계속해서 사악한 행동을 합니다. 경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사형시키고, 가난한 농부들의 집에 불을 지르고, 문둥이들이 모여사는 곳, 위그노들이 모여사는 곳에도 불을 지릅니다. 마을은 금세 공포에 젖어듭니다. 





『‘악한 반쪽보다 착한 반쪽이 더 나빠’ 버섯 들판에서는 이런 말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대포 포탄이 그를 두 쪼가리로 만든 게 천만다행이지 뭐야. 자작이 만약 세 조각이 났다면 우리는 무슨 일을 겪었을지 알게 뭐람.』

(반쪼가리 자작 109p 이탈로 칼비노)     


착한 반쪽

그러던 어느 날, 자작의 반쪽이 돌아옵니다. 착한 반쪽은 마을 사람들을 위해 선을 베풉니다. 문둥이 마을을 찾아가 문둥이 환자들의 병든 몸과 영혼까지 치료하려고 합니다. 그들의 부도덕한 행동을 교화하기 위해 설교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문둥이 환자들은 쾌락의 삶을 멈추는 대신 자신들의 민낯을 직면하고 좌절합니다.


또 위그너들은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열심히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갑니다. 착한 자작이 찾아와 가난한 이들과 나누는 삶을 살아가라고 설교합니다. 그 일로 위그노들은 착한 자작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보초를 섭니다.


마을의 기술자 피에트로키오드는 사악한 반쪽이 명령한 교수대를 만들면서 나날이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착한 자작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물레방아를 만들자고 제안하자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더 좋은 교수대를 만드는데 힘을 씁니다.





『그렇게 테랄바에서의 나날들이 흘러갔다. 그리고 우리들의 감정은 색깔을 잃어버리고 무감각해져 버렸다. 비인간적인 사악함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비인간적인 도덕성 사이에서 우리 자신을 상실한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반쪼가리 자작 109p 이탈로 칼비노)     


착한 반쪽 자작을 생각하면 함께 일했던 동료가 생각납니다. 그 동료에게 사람들은 이런 평가를 하곤 했지요. 물론 저도 그랬습니다.


‘사람은 참 좋은데.. 함께 일하기는 힘들어’     


사악한 반쪽 자작을 생각하면 또 이런 동료가 생각납니다. 그 동료에게 사람들은 이런 평가를 하곤 했지요. 물론 저도 그랬습니다.


‘아 진짜.. 뭐 저런..?! 피하는 게 상책이다.’

사악한 상사, 천사 같은 상사보다 제일 좋은 상사는 나와 코드가 맞는 상사입니다. 그리고 한평생 일을 하면서 나와 코드가 맞는 상사와 동료를 만나기란 참 쉽지가 않지요. 하지만 어떤 사람과 일을 하든 그 관계로 인해 나 자신을 상실하지는 말아야 하겠습니다.



자작은 다신 완전한 하나가 되었습니다. 사악함과 착함이 뒤섞인 자작, 마을에는 평화가 왔을까요?! 그리고 자작의 마음속에도 평화가 왔을까요? 인간에게는 양면성이 존재한다고 유대인 포로수용소 생존자인 빅터 프랭클은 말합니다. 자작도 그렇게 살아갑니다.


내 속에도 사악함과 착함이 공존합니다. 어떤 이들은 나를 ‘사악하다’ 말하고 어떤 이들은 나를 ‘착하다’ 평가할 것입니다. 그런데요. 그 모두가 바로 ‘나’입니다. 


아가다 사용설명서
‘실 없이 잘 웃음. 하지만 머리에 꽃 꽂을 때는 조심’  



『반면에 나는 완전한 열정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항상 부족함과 슬픔을 느꼈다. 때때로 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불완전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그가 젊기 때문이다.』

(반쪼가리 자작 120p 이탈로 칼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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