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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다의 작은섬 Jan 08. 2023

가장 좋은 안식처 The Book「죽음의 수용소」

시련의 의미 (2023.1.8. 일)


  



「가장 좋은 안식처 The Book」 매주 일요일 아침 8시, 한국의미치료학회 3기 동기선생님들과 독서모임을 합니다. 저희가 선정한 책은 빅터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 의미치료를 공부하는 상담사로서 이 책을 몇 번이나 읽었지만 읽어도 읽어도 그때마다 다른 생각을 낳게 하는 책입니다.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운명과 마주쳤을 때에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유일한 인간의 잠재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빅터프랭클)



오늘의 토론 주제는 <시련의 의미>였습니다. 빅터프랭클은 말합니다. 피할 수 없는 시련 앞에서도 인간은 자신의 태도로 선택할 수 있고 자신이 선택한 것을 책임지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나의 피할 수 없는 시련

삶은 찰나의 행복을 미끼로 던져놓고 수 없이 많은 시련을 견디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저에게 피할 수 없는 시련은 바로 저의 원가족입니다.


‘그래 잘하고 있어.’ 잘 버티고 있고, 이겨내고 있고, 이제는 괜찮다 싶다가도 찰나의 행복의 미끼를 무는 순간 나를 잡아 뜯는 시련 앞에서 나는 나의 존재 뿌리까지 흔들어 놓습니다.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답하는 방법

이해해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왜 시련과 고통은 언제나 약자의 몫일까요? 남들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내가 나약하기 때문에 이 시련을 견디지 못하는 걸까요? 선생님들과 피할 수 없는 시련을 대해 나눈 이야기를 글로 남겨봅니다.


첫째, 시련 앞에 서 있는 나를 충분히 돌봐주세요. 아픔에 크기는 없습니다. 내 손톱 밑에 있는 가시가 더 아픕니다. 내가 아프면 아픕 겁니다. 속상하고, 원망스럽고, 분노하고, 슬프고, 서운하고.. 내 시련 뒤에 숨은 감정을 충분히 돌봐주세요. 충분히 돌보아진 감정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곳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둘째, 시련 앞에 서 있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세요. 전지적 관찰자 시점으로 나를 바라보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럴 때는 만약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또는 친구가 그 시련 앞에 있다고 생각해보고 나에게 질문해 봅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해줄까? 친구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가?’



셋째, 대물림 되는 시련의 고리를 끊고 싶다면 명분(삶의 의미)을 찾아보길 바랍니다. 저는 나의 아이들은 나와 같은 아픔을 겪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가 아파하는 동안 내 아이들이 아플 수 있어요.


나는 가족들과 웃고 싶어요.
나는 가족들에게 사랑한다고 마음껏 표현하고 싶어요.
나는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지 사람들에게 힘들면 힘들어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죽을 만큼 힘들지만 그래도 같이 살아가자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피할 수 없는 시련은 나에게 선택을 강요합니다.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또 다른 하나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나는 선택하지 않는 것에 미련을 갖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도 나의 욕심이기 때문입니다.

 


피할 수 없는 시련 앞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한 알아차림, 그것은 바로 내가 스스로 나를 돌보고 나를 위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책임까지 끄집어와서 나를 아프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한 선택을 스스로 책임지며 살아가야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에 피할 수 없는 시련 앞에 계신 분이 있다면 이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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