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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다의 작은섬 Jan 26. 2023

아이고.. 삭신이야...

자판 두드릴 힘뿐이구나...(2023.1.26. 목)




‘보이는가? 저 반짝반짝 빛나는 자태!!!’



내 생애 이런 집에도 살아보고

아궁이에 불을 때고 솥단지에서 뜨거운 물을 데우던 집에서 13년을 살았고, 기름보일러 빨간 벽돌집, 드디어 집안에 화장실이 있는 집에서 7년을 살았다. 그런 나에게 도시의 집들은 어느 집이건 최신식 집들로 보였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오기 바로 전에는 91년에 준공된 아파트에서 살았다. 외풍이 심해서 겨울이면 코가 시릴 정도였지만, 성공했다 여겼다. 경상도 촌에서 올라와 이렇게 좋은 아파트에 살아보다니!!


사람 욕심이란

일 년이 지나고 나니 맞은편에 있는 더 좋은 아파트에 눈에 들어왔다. ‘저기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 생각했다. 그러던 중 치솟는 전세대란으로 지금의 집으로 이사 왔다. 그전에 살던 91년 된 아파트보다 좋은 ‘맞은편에 있는 더 좋은 아파트 같은 집’이었다.

     

나는 한동안 “오예~ ”를 외쳤다. 꿈에 그리던 내 집이다. 있는 돈 없는 돈을 탈탈 털었기에 리모델링은 꿈도 꿀 수 없었지만 리모델링을 안 해도 마냥 신났다. 테레사를 둘러업고 방문 손잡이를 갈고, 문에 페인트칠을 하고, 욕실도 셀프로 인테리어(?)를 했다. 정말 신났다.


그런데 살아보니 우리 아파트가 이 동네에서 제일 오래된 것이었다. 사람 욕심이란... 끝도 없다. 아궁이 불 때는 곳에서 이런 최신식 아파트에도 다 살아보네 했다가도 살아보니 좀 더 좋은 아파트에 살고 싶은 욕심이 생기니 말이다.


나이를 잡수신 우리 집

우리 집도 우리처럼 나이를 잡수시더니 하나씩 하나씩 아픈 곳이 생긴다. 4년 전 세면대 수전이 망가졌을 때 내 생애 처음으로 수전을 교체해 봤다. 4시간이 걸렸다. 우와.. 진짜! ㅇㄱㅌㅋ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지만 나는 오만가지 역경(?)을 이겨내고 수전을 교체했다. 다행히 아직까지 잘 사용하고 있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미지의 세계

4년 전 처음 세면대 수전이 망가졌을 때 전문가를 불러서 수리를 할 것인가 아니면 셀프로 수리를 할 것인가 나는 고민했다. 10년이 넘게 자취생활을 했었지만 나도 수전교환은 처음이라.. 수전은 교환해 봤지만, 세면대 수전과 싱크대 수전은 또 다르더라. 이것도 내 생애 처음이라..


결심하고 몇 번의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지만 직접 경험하기까지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이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드디어 시뮬레이션을 끝냈다. 나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조심스럽게 연습한 데로 나아가지만 생각지도 못한 난관을 만났다. 이리저리 애써보지만 잘 풀리지 않는다. 다시 한번 시뮬레이션을 본다.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거지?


좋아. 다시 한번,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하나를 처리했다. 그리고 다음 순서로 넘어간다. 그래 이제 되었어. 술술 풀리는 것 같더니.. 저 한 고개만 넘으면 되는데 도저히 넘어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이다. 마지막으로 힘써보고 안되면.. ‘아놔..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긴 못하면 그냥 물바다 되는 거지’, ‘아~ 모르겠다.’ 일단 다시 해보자. 여기가 안 풀리면 반대편으로 풀어보자. 그래. 해보자. 이럇챳차! 오우~ 예! 풀렸다.


장하다. 아가다.

한 시간 반의 사투 끝에 나는 싱크대 수전을 갈았다. 새 수전설치시간 30분, 망가진 수전 제거 시간 1시간.. 싱크대 새 수전을 바라본다. 뿌듯하다. 내가 해냈다. 미지의 세계 하나를 나는 또 정복했다. 이제는 못할 것이 없을 것 같다. 음 하하


아이고 삭신이야.

일단 수전을 잘 설치했는지 설치 후 누수가 있지는 않은지 휴지를 둘둘 싸매고, 물받이를 받쳐놓았다.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당장 설치가 잘되었을까 걱정이 앞선다. 과거의 망령(?)을 싹 치우고 나니 제야 오만 삭신이 아프다... 아이고 삭신이야..


싱크대 수전을 고치고 나면 돌아올 줄 알았던 글감은 돌아오지 않고 그 자리를 쑤신 삭신이 차지했다.


반복되는 일상, 타성에 적어 사는 나에게 내가 가보지 않은 경험의 세계, 그 미지의 세계는 항상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그리고 미지의 세계는 작은 것 하나라도 나를 고민하게 한다. 한번 가볼까? 아니면 가지 말까?



미지의 세계는 두렵다. 긴장된다. 불편하고, 불안하다. 어쩔 땐, 살짝 귀찮기도 하다. 하지만 그 반대로 설레기도 하고 도전해보고 싶기도 하다. 그래. 나를 믿어보자. 믿자. 나를 믿고 가보자.




<이상! 2023.1.26. 목요일 아가다네 싱크대 수전교환 역사기록 끝!!>



빛나는 자태! 나를 도와준 새 장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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