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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다의 작은섬 Feb 21. 2023

이거 만만치 않겠는데?!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 (2023.1.25. 수)




‘아. 맞다. MBTI 검사해 보자.’


마구마구 남발한 <공수표>의 역공격

명절을 함께 지내러 온 20년 지기 쩡언니가 말했다. MBTI가 한참 유행처럼 번졌고 MBTI 공부를 하고 있었던 나. 지인들에게 <나 MBTI 공부하잖아. 내가 다 해석 해줄게. MBTI는 검사가 보다 해석이 중요한 거야> 자격을 갖춘 전문해석상담가임을 강조하며 <내가 다 해석해 줄게>를 남발하고 다닌 후폭풍이었다. 이래서 사람은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공수표>를 그날 기분에 따라 내키는 대로 남발해서는 안 된다.(ㅠㅠ) 그리고 나는 배웠다. 자신이 남발한 <공수표>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나에게 준비는

뜨악.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나에게 준비는 두려움을 넘어서게 하는 도구. 언니와 형부, 조카까지. 준비되지 않은 MBTI 검사와 해석, 상담을 하려고 하니 마음속에서 거부반응이 일어난다. 사실 피곤해서 살짝 귀찮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무분별하게 남발한 <공수표>였고 나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나마 지인이니 <편안하게 하자> 마음먹었다. 두둥! 그런데 별로 내켜하지 않는 사람은 나 말고도 한 분이 더 계셨다. 준비되지 않은 MBTI 전문상담가와 MBTI 검사를 내키지 않았던 피험자(형부)와의 만남. 그렇게 불안한 MBTI 검사와 해석이 시작되었다.


검사와 해석을 하는 내내

졸린 눈과 이어지는 하품으로 나를 당황스럽게도. 열(?) 받게도 하는 형부. 나는 형부의 두 눈을 빛나게 하고 싶기도. 하품하는 저 입을 틀어막고 싶기도 했다. 형부와의 싸움인지 평정심을 잊고 싶지 않은 나와의 싸움인지 알 길은 없었지만 굳어가는 내 얼굴이 느껴진다. 연신 하품하고 집중하지 못하는 아빠가 신경 쓰이는 것인지 함께 검사하던 조카는 내 눈치를 슬쩍 보더니 <아빠. 제발 집중 좀 해>라고 말하며 형부를 타박했다. 그 모습이 나를 더 당황하게 만들었고 불안한 나는 이제 온통 <빨리 해석을 끝내 버려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뇌가 되어버렸다.


‘그럼. 내가 00이 선호도가 분명하다는 건, 다른 쪽이 잘 개발되지 않았다는 거네?’

‘아니. 다른 선호가 개발이 안된 것이 아니라 00 선호를 능숙하게 잘 사용한다고 볼 수도 있지?’

의미를 잊어버리고

형부는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나의 목소리 톤을 보고 대화를 멈췄다. MBTI 해석상담자의 역할은 피험자가 자신의 선호를 이해하고 진정한 자신을 찾아갈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을 해야 한다. 만나고 싶지 않은 피험자를 만났고 얼른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던 나는 MBTI 검사해석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상담을 원하지 않는 내담자가 억지로 상담을 받으러 올 수도. 상담 태도가 내 마음에 차지 않는 내담자를 만날 수도. 상담이나 심리검사 해석 중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토론(?)을 요구(?)하는 내담자가 만날 수도 있다. 그리고 상담자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거나 상담을 받으면 마법같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계신 분들도 계신다.


변화하고자 하는 절박함

그리고 약간의 조력이 마법 같은 일을 가능하게 한다. 예전에도 비슷한 문제로 고민했고 지금도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지만 예전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을 지금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알아차릴 수 있도록 무르익었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변화하고자 하는 절박함이 있었기에. 나 스스로 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절실히 원했기에. 그 알아차림이 나를 변화로 이끈 것은 아니었을까.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과 마법같이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상담실 문을 두드렸을 내담자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을 때 겪는 그 아픔을. 그 막막함을. 그 답답함을. 그 분노를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현장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들의 원하는 바람을 바라보며 그들이 원하는 길로 가도록 조력할 수 있을까?


내가 지금까지 만난 피험자나 내담자는 너무도 신뢰로 웠나 보다. 상담현장에는 정말 무궁무진한 사람과 현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형부에게 감사하다. 그런데... 나...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 현실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이거 만만치 않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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