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새벽. 나는 나를 퇴고합니다.

관계가 힘든 나에게 (1편) 알아차림 (2023.2.16. 목)

by 아가다의 작은섬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지위나 권위 있는 사람들에 의해 규정된 ‘올바른 사고방식’이었다. 우리는 자신의 내적인 동기에 따라 행동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는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나?’를 생각하면서 ‘머릿속에서’ 살아간다.』

(비폭력대화 79p)


관계 속에서 40년을 넘게 살았지만 아직도 관계가 어렵습니다.


모임이 있는 날이면

어떻게 해야 사람들과 편안하게 대화할까? 아니 그보다 내 마음이 편했으면 좋겠다. <오늘은 안심이야. 찝찝하지 않아. 불안하지 않아> 집에 돌아와서도 안심이 되는 그런 날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모임에서 어떤 모습으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지? 무슨 말을 했었지? 어떤 행동을 했었지? 그 사람이 말할 때 내 표정은 어땠지?라는 불편한 물음이 내 안에서 생겨나지 않았으면.. 정말 좋겠다.


그런 날 있잖아요.

이만하면 마음에 튼튼한 근육이 생기지 않았을까. <나는 이제 괜찮다>라고 생각했는데 괜찮지 않았던 날. <이 정도 나를 돌봤으면 좀 나아질 법도 한데. 언제까지 이렇게 힘들까?>라는 물음이 <유독> 떠나지 않은 날 말이에요. 왜 그럴까? 한동안 생각했어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지만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관계로 울기도. 웃기도. 합니다. 갓난아이부터 백발 어르신까지 관계는 누구에게나 쉽고도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그냥 편했으면 좋겠어요. 누군가를 만나로 가는 길도.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도. 그저 편했으면 좋겠어요.


참 잘한 것 같아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말이에요. 오늘 새벽 <비폭력대화>를 읽으면서 발견한 한 문장으로 내가 관계에서 불편했던 <이유> 하나를 알 수 있었습니다. 나를 돌보는 일 중에서 가장 잘한 것 두 개를 꼽으라면 독서와 글쓰기라도 말하고 싶어요. 그랬나 봐요. <저 사람이 나에게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어떻게 말해줘야 저 사람이 기뻐할까?> 만나기 전부터. 만나는 중간에도. 만나고 나서도 이런 물음으로 가득 차 정작 나를 챙기지 못했나 봐요.


사람들을 만나면 <유독>

쉴 새 없이 말을 많이 하거나 아무 말 없이 침묵하거나. <유독> 말을 많이 한날은 불편한 만남이 자리한 날이거나 같은 관심사를 가진 이를 만나 넋을 잃고 신나게 이야기한 날이거나. <유독> 말이 없을 때는 대부분 내가 말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만남이 자리한 날이거나 서로의 관심이 달라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는 날이거나.


<유독> 눈치를 많이 보던 아이였습니다.

만남이 편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자라온 환경 때문 일수도 있고. 어느 정도 타고난 기질적인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알아차림.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 편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다른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만 하려고 하는 나의 행동 때문이라는 것. 이 알아차림이 이제 나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겠지요. 이 새벽 좀 더 나와 깊이 있는 대화를 하고 싶어 지네요.



온전한 수용. 존재자체의 공감

온갖 단어들의 향연에서 혼란스러운 나


나는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 걸까?

난 무엇을 원했던 걸까? 이 사람들과 열결? 아니면 내 존재자체의 온전한 수용? 인간이 인간을 온전히 수용한다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나는? 나는 나 자신을 온전히 수용하기는 할까? <나를 온전히 수용하지도 못하는데 나는 누구에게 온전히 수용받기를 원하는 걸까?>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도 모른 체 모호한 마음을 가지고 이루어진 만남. 그 속에 있는 나. 그들이 뺏아가 간 것이 아니라 내가 넘겨준 마음이기에 혼란스러움에 수치심을 더한 자책과 원망. 불안과 두려움 복잡 미묘한 미로 속에 갇힌 나.


독심술사이길 바랐나?

어떻게 사람들 마음을 속속들이 알고 그들이 원하는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그건 죽었다 깨어나도 사람이라면 아무도 할 수 없는 일. 내 존재가 존중받기를. 내 존재가 배려받기를. 내 존재가 수용되기를. 이 온 마음이 너에게 닿기를. 너와 닿을 수 있도록 나를 표현하기를. 너와 닿을 수 있도록 너의 표현을 들을 수 있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내가 불안하지 않고 나를 표현하고 그들의 표현을 듣고 싶은 것 그리고 그 만남이 서로에게 즐겁기를. 넋을 잃고 신나게 이야기하는 날, 거기에 해답이 있겠지.



불가능한 일을 꿈꾼 자의 최후. 그것은 바로 불안과 두려움이었습니다. 이것들을 불러온 것이 나라면 이것들을 부르지 않을 자유도 내게 있음을. 이것들이 내 안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것 뒤에 숨겨진 나의 진정한 바람을 불러올 수 있는 사람도 나뿐이라는 사실. 그 진실 하나가 나를 안도하게 합니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좀 더 자유롭기를. 좀 더 나은 삶이기를. 나는 오늘 이 마음을 담아 내 글을 다듬듯 나를 다듬고 나의 글을 퇴고하듯 오늘의 나를 퇴고합니다.


누군가 당신의 몸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넘긴다면 당신은 분노할 것이다. 그런데 당신의 마음을 어떤 이에게 넘겨서 모욕하도록 하고 그 결과적으로 당신을 교란하고 혼란스럽게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더 수치스러운 것 아닌가?

(에픽데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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