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좋지 않은 사람인가?

관계가 힘든 나에게(2편) 치유글쓰기 (2023.2.20. 월)

by 아가다의 작은섬





비폭력대화 232p>

우리 안의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표현하는 욕구와 가치들을 인식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 연민 속에서 나는 두 가지 욕구를 모두 볼 수 있었다. 하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호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 자신의 욕구도 잘 돌보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 뒤에 자신과 다른 사람의 삶을 멋지게 만들려는 영적인 목적과 에너지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비록 힘든 일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 즐거운 놀이 같은 요소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나는 왜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고도 항상 외롭고 공허했을까?


바쁘잖아.

<언니는 항상 바쁘잖아요! 날 만날 시간은 있어요> 이 동네로 이사 오고 특유의 오지랖 때문인지 책임감이 강한 기질 탓인지. 참 바쁘게 사람들과 만나고 어울렸습니다. 빨리 아네스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하나의 목적 앞에 나는 동네방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글벗 @써니 님의 글에서 <좋은 사람들이었기에 더 찬바람이 분다> 던 글을 읽고 마음속 깊이 묻어두고 꺼내놓지 못한 일을 비워내고자 글을 써봅니다. 저는 관계 중에도 엄마가 되고 나서 만나는 관계가 참 어렵더라고요.


<좋은 사람들이었다는> 전제 조건에서

시작된 질문. 그들이 좋은 사람들이면 나는 좋지 않은 사람인가? 어느 날은 그들이 좋지 않다는 명분을 찾기 위해. 어느 날은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정당성을 찾기 위해. 보냈던 수많은 시간.


... 하지 않기 위해

<함께 어울리던 사람들 중에서 나만 모나게> 떨어져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그들을 가해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 내가 피해자로 남지 않기 위해. 어느 날은 서로의 위치가 바뀌는 날도 있었지만 그들과 나의 비틀어진 관계에 대한 정의가 가해자와 피해자로 이분법 하지 않기 위해 내가 얼마나 애썼는지. 홀로 버티는 나를 동정하지 않기 위해. 함께 하며 서로를 보듬는 저들을 원망하지 않기 위해. <인내. 나는 수많은 시간을 인내했습니다.> 가슴에 묻어둔 나를 글로 쓰기까지. <내가 너무 기특해서> 찔끔 눈물이 나네요.(사실 대성통곡함) 오늘 새벽 이 글을 퇴고하는 동시에 떠나보낼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했던 과거의 나를. 이제 놓아줄 거예요.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행위에 대한 사사로운 생각들이다. 무지몽매한 사람은 제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늘 남 탓만 한다. 하지만 깨우치기 시작한 사람은 자신을 탓한다. 깨우친 사람은 자신도 남도 탓하지 않는다.』

(에픽테토스)


차라리 무지몽매한 사람이었으면

나는 아무 잘못도 없다고 속 시원하게 마음껏 욕이라도 하게. 이 사람 저 사람 만날 때마다, 내가 하고 싶을 때마다 마음껏 욕이라도 하게.(정말이지 마구마구 욕하고 싶었다) 무지몽매한 사람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이제 괜찮지 않니?>라는 친구의 물음에 <쿨>하게 이제 괜찮아라고 대답할 수 없는. 괜찮지 않은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이까 짓 것, 별거 아니라고. <나 혼자서도 괜찮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쿨하고 싶었는데 한동안은 내 세상에 그들만 있는 것처럼 아파했습니다. 모든 관계에서 실패한 사람처럼.


내 존재가 사라진 자리에는

<허무와 분노만> 쌓였습니다. 상대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지 말고 내 바람을 이야기하는데 좀 더 애써볼걸. 좀 더 나의 감정에 당당해 볼걸. <네가 그랬던 것처럼...> 뭐가 그리 두렵다고. 마지막 순간까지 왜 나는 너의 말과 행동에 부합하지 못한 나를 탓했을까? 모호한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만난 것이 이토록 나를 화나게 하고 아프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좀 더 내 마음을 들여다볼 것을 왜 그 일을 피하기만 했을까요.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에요. 지금이라도 그때의 나를 마주 보고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지금이라도 글을 쓰며 그때의 나를 떠나보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에요.


무지몽매했다.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할까? 어떻게 하면 상대의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할까? 다른 사람에게 내 자리를 내어주면서 동시에 상대 또한 내가 듣고 싶은 말과 내가 원하는 행동을 해주길 바라며 나 역시 상대의 자리에 앉길 바랐습니다. <우리는 친하니까> 서로의 자리를 마음대로 오가길 바랐던 걸까?


동일시, 너도 나와 같기를.

모두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 착각. 아니. 사람 마음은 다 다르지만, 친한 사람은 예외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 알아차림 뒤에 원망과 미움이 가득 차 버렸습니다. 내가 원하는 한 가지를 해주지 않은 원망이 더 커서 그들이 했던 수많이 배려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의 삶에 기여하고자 했지만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나는 상처받았다>고 우겼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아! 서! 상대가 내 마음을 헤아려주길 바라는 무지몽매한 사람이 바로 <나>였습니다. 정작 자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상대가 알아서 나를 배려해 주길. 상대가 나를 불평하는 응석받이로 만들지 않기를 바라는. 그저 <무지몽매한> 사람이었습니다. 이토록 아파했던 이유가 내 마음속 이야기를 듣지 못했던. 내 마음에게 조차 당당하지 못했던. 나조차 인정해주지 못했던. 나조차 나를 공감해주지 못했던 <나 때문이란 것을>. <너무 오랜 시간 그들이 원하는 말과 행동을 해주지 못한 나를 탓하느라> 정작 나를 돌보지 못해 내 상처가 오래도록 낫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비폭력대화 230p>

자기 용서 단계에서는 그 선택도 당시에는 나름대로 삶에 기여하고자 하는 시도였음을 이해하게 된다. 애도와 자기 용서 과정으로 자책과 우울에서 자유로워질 때, 우리는 성장(시련의 의미)


‘너도 좋은 사람이었고 나도 좋은 사람이었어. 다만 우리가 서로 연결되지 못했을 뿐’



당시에도 나름대로

잘 지내왔고. 잘 지내고 있었고. 앞으로도 잘 지내고 싶었던 마음. 좀 더 나은 <나>를 위해. 좀 더 나은 내 삶을 위해. 좀 더 나은 나의 인간관계를 위해. 용기 내었던 나의 선택이었습니다. <좋은 사람들이었다는> 전제조건이 붙지 않았다면 나를 성찰하고 통찰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그때부터 저는 <알>을 깨고 나오고 싶었나 봅니다. 이제는 오랫동안 아파했던 나를. <난 괜찮아>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던 나를 놓아버렸습니다. 그리고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관계란 무엇일까?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노력하고 용기 내었던 나를 남겨놓았습니다.


관계의 시작은

<나부터>라고 했던가요. <이제는 나의 목소리를 듣는데 많은 시간을 내려고요.> 내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바라는지. 아무런 평가도. 판단도. 어느 잣대도 갖다 붙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 안에 존재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새벽시간이 좋습니다. 오로지 내 목소리를 침묵으로 듣는 시간. 이 새벽시간이 나를 살아가게 합니다. <새벽 독서를 통해 나는 나를 성찰하고 새벽 글쓰기를 통해 나를 다듬고> 글을 퇴고하듯 오늘도 새로워진 나를 퇴고합니다. 저는 오늘도 수 없는 다듬기와 퇴고를 통해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이와 같기를..



비폭력대화 228p>

우리가 여러 느낌들을 가지고 태어난 데에는 목적이 있다. 이런 느낌들의 목적은 우리가 원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추구하고 실현할 수 있도록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