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좀 <우쭐해> 지려고요.

관계가 힘든 나에게(3편) 나에게 당당하자. (2023.2.21. 화)

by 아가다의 작은섬





『공감은 마음을 비우고 우리의 존재 전체로 듣는 것.』

(비폭력대화 165p)
『문제를 <해결해 주고> 다른 사람의 기분을 더 좋게 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가 온 존재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방해한다.』

(비폭력대화 168p)
『작가이며 신화학자인 조지 캠벨 : 더 없는 행복을 느끼려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비폭력대화 178p)


저는 이 새벽이 참 좋습니다.

오랜 시간. 아니 태어날 때부터였을까요? 아니면 살아오면서 잊어버렸을까요? <내 목소리를 듣는 방법>. 이제야 내 목소리가 들리네요. 세상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중하면서 살다 보니 내 목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아니 들리는데 무시했어요. 사람들에게 무시받기를 끔찍하게도 싫어하면서 수많은 시간을 나를 무시하면 살았습니다. 하루 24시간 중에 내 목소리가 제일 잘 들리는 새벽시간이 나에게는 선물 같은 시간입니다.


확신이 서지 않은 마음.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에 <주눅> 들었습니다. 세상 가치에 안 맞는 것 같아서. 상대를 거슬리게 하는 것 같아서. 나도 이 세상 속에 포함되어 살아가려면 그래야 되는 줄 알았습니다. 세상의 이치에 나를 맞추면서 살다 보니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에. 내가 원하는 모든 바람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아니 내 느낌과 바람에 자신이 없는 줄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인가? 올바른 생각을 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다. 자연의 순리에 합당한 생각을 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길 때는 얼마든지 우쭐해해도 좋다. 자신의 권한에 속하는 선한 것에 우쭐해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에픽테토스)


이제 좀 <우쭐>해지려고요.

당당해질 거예요. 내 감정에. 내 바람에. <내가 내 안에 온전히 존재> 할 거예요. 누군가 나를 공감해 준다고 한들 듣지 못했던 건, 내가 나를 공감해 본 경험이 없어서예요. 누군가 나를 온전히 수용해 준다 한들 느끼지 못했던 것은 내가 나를 온전히 수용해주지 못해서예요. 누군가 나를 존중한다 해도 스스로를 존중하지 못했던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던 거예요. 나에게 당당해질 거예요. 온 마음을 누리고 내 바람을 위해 행동할 거예요. 그래서 세상이 나에게 주는 배려, 존중, 수용, 모든 것들은 다 누리면서 살 거예요.


이제 확신을 가질 것에요.

내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에게 당당해지고 내 바람에 확신을 가질 거예요. 그리고 그 바람을 따라 행동할 겁니다. 저는 그렇게 살아갈 거예요. 앞으로의 내 삶은 겉으로만 당당하지 않는 내 내면에 당당한 사람이 될 거예요. 난 당당해질 거예요. 난 자유로운 사람이에요. 난 오늘을 살아가는.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지는 오늘을 살아가는 당당한 사람이에요. 내가 느끼는 모든 것들에 확신을 갖고 당당하게 살아갈 거예요. 나는 나니까. 그래도 괜찮아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그래도 괜찮아요.



죽음의 수용소에서 191p>

인간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 그리고 다음 순간에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항상 판단을 내리며 살아가는 존재. 인간은 어는 순간에도 변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그 사람이 처한 생물적, 심리적, 사회적 조건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 존재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인간에게는 그런 조건을 극복하고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인간은 가능하다면 세계를 더 나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고, 필요하다면 자기 자신을 더 좋게 변화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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