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나 살아있네!「삶의 한가운데」

함부로 죽음을 (입)에 담지 마세요. (2023.3.15. 수)

by 아가다의 작은섬





삶의 한가운데 185p>

나는 전율하는 공포를 느끼며... <중략>... 생애 처음으로 나는 동물적인 공포를 느꼈다... <중략> 나는 내 생명을 별로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이것의 유지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내가 공포를 느낀 것이다.


새벽에 다시 깨어있음(세로토닌 모닝)을 선택한 지 3개월이 다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작년에 150일 정도 미라클모닝을 실천하다가 건강상의 문제로 중단한 적이 있습니다. 새벽시간을 정말 좋아하지만 새벽마다 눈을 뜨고 일어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5분만 더>를 두 번 외치고. <그냥 자버릴까>하는 유혹을 물리치며 힘들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지요. 겨우 눈을 뜨고 「삶의 한가운데」 읽는데 이 한 문장에 오래도록 머무르는 나와 새벽에 일어나기 위해 홀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내가 겹쳐집니다. 그 사투 속에서.


‘아.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 생명력을 발견합니다.’


공포. 분노. 투쟁. 열정. 희열... 등 감정을 느끼는 것만큼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주는 매개체가 또 있을까요. <아.. 힘들어죽겠다.><죽고 싶어><죽을 만큼 힘들어> 우리는 너무도 쉽게 <죽음>을 언어로 표현합니다. 마치 죽음 따위는 별거 아니라는 듯. 내 생명 따위는 하찮다는 듯. 죽음 뒤에 가벼워지더라도 살아있는 동안은 결코 가볍지 않기에. 죽음을 가볍게 입에 담지 말아야겠습니다. 나의 죽음도. 타인의 죽음도. 아무도 <죽음> 앞에서 확답할 수 없으니까요. 그 무엇도. 그 어떤 언어로도 죽음을 정의할 수 없습니다. 죽은 사람이 글을 쓸 수도. 언어를 사용할 수도 없잖아요.


쉽게 죽음을 입에 담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장난처럼 진담처럼. 허세 가득 별거 아니라는 듯. 분노 가득 하찮다는 듯. 죽음을 가볍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제 죽음을 하찮게, 별거 아니라는 듯 사용하지 않으려고요. <죽음> 결코 가볍지 않은 단어는 생명력 넘치는 삶을 보게 합니다. 투쟁하던 분노하던 희열을 느끼던.. 생명력 넘치는 오늘의 삶에 감사합니다.


새벽, 생명이 태어나듯 자리에 털고 일어나는 나는 가장 순수한 나를 만납니다. 오늘을 시작하기 전 어떠한 자극도 묻지 않은 가장 순수한 나를 만나는 시간. 죽음과 생명의 탄생 경계에 있는 듯한 새벽시간. 부활하듯 여명이 떠오릅니다. 깨어나세요. 생명력 넘치는 오늘의 삶을 만끽하세요. 그리고 조용한 삶이든 투쟁하는 삶에서든 내가 맡는 향기. 소리. 감촉. 맛. 눈앞에 보이는 세상에서 <역시! 나 살아있네! 감 잡았어! 가즈아~>라는 넘치는 생명력을 느껴보세요. 여러분의 삶도 나의 삶도 언제나 응원합니다. 파이팅~~~!!!


‘난다. 난다. 꽃 돼지~’



p.s. 자칭 제 별명입니다.


이게 무신일이고? 오늘 제 발제문이랑 비슷한 아네의 독서기록장ㅎㅎ 신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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