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네스의 생일이 1주 정도 지난 어느 날, <왜 내 생일에 편지를 써주지 않았냐고.> 미안하다고 말하며 편지를 하겠다고 대답하고도 2주가 지난 오늘에서야 나는 편지를 썼다.
아네스에게 무슨 말을 할까.
<요즘 웃음이 넘치고 친구들과 재밌게 지내는 너의 모습을 볼 때 엄마는 안심이 된다. 네가 지내는 매일이 행복한 것 같아서. 엄마가 공부하는 동안 스스로 밥을 챙겨 먹고 동생 밥까지 챙겨주는 너에게 감사하다. 너의 행동이 엄마에게 큰 힘이 된다.> 이런 몇 가지 감사를 적기 위해 나는 머리를 짜내고, 몇 번을 지워가며 편지를 썼다.
마셀로젠버그>
‘아빠, 아빠는 내가 뭘 잘못했다는 말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 아세요? 하지만 아빠는 내가 뭘 잘했다는 이야기는 절대 하시지 않아요’
언젠가부터
아침에 눈을 뜨면 핸드폰을 손에 쥐고 놓지 못하는 너를 보았을 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참다가 얘기한다는 듯 쏟아내는 내 말을 두 눈 동그랗게 뜨고 그저 듣기만 하는 너에게 나는 <엄마. 알았어. 다음부터 책 읽거나 공부할 때는 핸드폰 거실에 두고 할게>라는 말을 듣고 말았다.
나는 하루 종일
우리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많이 할까. 감사하다는 편지 몇 줄을 쓰기까지 머릿속을 다 뒤지고 온 마음을 써야 하는 것에 비해 아이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말은 복잡하게 머리를 쓰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술술 나온다. 아이들을 걱정한다는 명목을 앞세워 쓰는 글이라면 순식간에 편지지 한 장을 다 채우고도 모자를 테다.
그래. 내가 아이들에게 하는 말 대부분이 나의 걱정에서 비롯되었음을. 그리고 아이들이 나라는 존재를 알아주었으며 하는 마음도 있음을 안다. 하지만 아이들이 나에게 바라는 것이 걱정일까. 그리고 나 또한 아이들에게 존재자체의 감사를 바라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걱정만 쏟아냈구나.
마셀로젠버그>
여러분은 어떤 감사의 말을 들으면 뛸 듯이 기쁘시겠습니까?
어째야 쓸까.
아무래도 나의 뇌는 잘하는 것보다 잘 못하는 것을 발견하는데 더 특별난 재능이 있나 보다. 그나마 다행이다. 감사일기를 3년째 쓰다 보니 그래도 의식만 한다면 감사할 일이 넘쳐난다는 것을 알아차리니 말이다.
나는 어떤 감사의 말을 들으면 기쁠까.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 나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감사를 발견해 주는 감사가 나를 기쁘게 할 것 같다. 아마 아이들도 이것을 바라겠지. 가족에게 감사하다고 표현하지 않았지만 쭈욱 감사일기를 썼다. 이제는 의도적으로라도 감사를 말로 표현해야겠다.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감사하다고 꼭 말해야겠다. 감사가 일상이 되도록.
아이들은 오늘 나에게 행동하는 감사를 가르쳐주는구나. 그래. 이제는 감사를 말로 표현할 수 용기를 가져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