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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다의 작은섬 May 27. 2023

술잔 부딪치듯 부딪치는 서툰 관계 속에서

만남을 기록하며..(2023.5.27. 일)




진로(眞露)

참이슬
진로 (塵勞)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친구가

열심히 일해서 번돈으로 집 가까운 곳에 땅을 사고 조립식 농막을 마련했다. 우린 아이들과 함께 맛있는 고기와 진로 2병과 와인 1병, 갖가지 안주거리, 라면을 사들고 농막을 찾았다. 아이들은 농막 근처 논에서 개구리를 잡고 깔깔거리며 웃었고 농막이 떠나가라 저들끼리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고 우리는 아이들 먹이고 남은 고기 앞에 진로(眞露)와 진로 (塵勞) 들고 앉았다.


아이들이

여섯  되던 해에 만난 인연이 6년이 되었고 그 아이들은 이제 6학년이 되었다. 아이들은 커가는 동안 잘 지내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면서 지냈듯이 우리도 아이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만남을 이어왔다. 6년의 시간 동안 소주 한잔을 못 마시던 친구는 소주 한 병을 마시게 되었고 소주 한 병을 마시던 친구는 소주 한잔을 못 마시게 되었지만 우리는 한잔의 진로를 짠 할 때마다 지나간 이야기에 웃음꽃을 피우기도 하고, 우리의 심신을 괴롭히는 노여움과 욕망 따위를 털어버리기도 했다. 배터지록 먹고 마시고 뻥 뚫리듯 쏟아내는 이야기 속에 시간도 우리와 함께 마비되어 버린 날이었다.


이슬을

한잔 한잔 머금을수록 우리는 지나간 우리 관계를 되짚어본다. 우리는 왜 그렇게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려고. 모두에게 착한 사람이려고. 다른 사람에게 맞추려고. 이곳저곳에 소속되려고 애썼는지. 아이들도 싸웠다가 화해했다가 하면서 저들만에 방법을 찾아가며 잘 자랄 텐데 왜 그리 걱정이 앞서서 참견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왜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았었는지 진솔한 이야기가 술잔과 함께 오고 갔다. 그때의 우리는 엄마 역할에 과하게 몰입된 첫째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던 <나>로, 관계 속에서 많이 서툴렀고 엄마로서 불안함이 진듯하게 깔려있는 <나>로 살고 있었다. 이야기를 풀어내고 진로 한잔 한잔에 시간마저 멈추어버린 것 같은 공간에서 우리는 시간이 흘러 흘러 흐른 만큼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상처받은 감정만은 또렷하게 남아 있음에. 알딸딸하게 마비되었던 감각이 화들짝 놀라 깨어버렸다.


술잔 

부딪치듯 부딪치는 서툰 관계 속에서 좀 더 나를 사랑하고 내 마음을 더 들여다볼 수 있는 <나>가 될 때까지. 어떤 만남이 <>편안하게 하는 만남인지 알게 될 때까지. 우리 옆에는 비워지는 술잔과 숱하게 흘린 눈물이 있었다.


우리에게 편안한 만남이란
밤새 술잔을 기울였지만 숙취하나 없이 오히려 개운한 아침을 맞이하듯 만남 후에도 아무런 숙취가 남지 않은 것 같은 만남, 만남 후에도 나와 너에 대해 아무런 평가도 판단도 남지 않는 그런 만남이었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편안한 만남이란 만남 후에 이불속으로 웃으며 들어가서 편안하게 잠들 수 있게 하는 그런 만남이라고.


<그럴 수도 있지>
나도 너도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마음. 평가와 판단이 빠진 심플한 관계에서 나를 좀 더 사랑하게 되고 너를 좀 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어른이 되어도 어른이 되어갈수록 관계는 어렵고 서툴다. 아마 아이 같지 않아서겠지. 서툶이 곱해질수록. 서툶에 고민이 더해질수록. 나에 대한 질문이 많아지고 나를 좀 더 알고 싶어 진다. 아마 어른이 되고 잊어버렸던 아이 같던 <나>를 찾아가기 위해서겠지. 희미해진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있었던 아픈 감정을 진로 한잔에 털어버렸다.


다행이다.

마음 편안 들과 만나 진로(眞露) 한잔 기울이며 진로 (塵勞)<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털어버릴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잔혹동화 같은 어른들의 세상에서 나에게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찾아가게 하는 편안한 친구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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