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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다의 작은섬 May 28. 2023

밥한상의 의미

김치부침개(2023.5.28. 일)




밥한상

어제 아침부터 시작된 비가 오늘 하루 내내 멈출 듯 멈추지 않고 계속 내린다. 오늘 독서모임에서 <내 인생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밥 한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들은 각자 기억 속에서 대접받은 것 같은 밥한상을. 고마웠던 밥한상을. 평화로웠던 밥한상을 찾아냈다. 그리고 한 선생님이 본인은 <김치부침개>를 너무 좋아해서 생일날에도 다른 거 다 필요 없이 김치부침개만 한소쿠리 구워놓으면 그렇게 좋았다고. 심신이 지칠 때도 김치부침개만 있으면 된다고. 그래 오늘 점심은 김치부침개로 정했다.


엄마 오늘 반찬은 뭐야?

우리 둘째 테레사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내 얼굴을 보면 <엄마 오늘 아침은 뭐야?>하고 질문하고 학교 다녀오면 <엄마 오늘 (저녁) 반찬은 뭐야?>하고 인사하듯 질문한다. 첫째 아녜스 때부터 지겹? 도록 들어온 말이 정말 지겨워져 버린 걸까. 그날도 어김없는 테레사의 질문에 <버럭> 화를 내버렸다.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제방에 들어가는 테레사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투닥투닥 음식을 했다. 집안에 금세 퍼지는 맛있는 냄새에 이끌러 방문을 열고 나온 테레사가 슬쩍 내 옆에 서서 싱글벙글 웃으며 소리친다.


우와~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다.


테레사는 밥한상에서 무엇을 찾고 있었을까?

저녁을 차려놓고 학교 가는 길,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본다. <엄마 오늘 반찬이 뭐야?>라는 아이들의 질문에 왜 그토록 화가 났던 걸까. 사실 나는 테레사의 질문보다 질문뒤에 있을 테레사의 행동을 지레짐작하고 서둘러 화를 낸 것이다. 테레사는 본인이 원하는 반찬이 아니면 <히잉~! 난 그거(반찬) 싫은데.. 히잉 히잉 히잉> 하며 불편한 마음을 마음껏 표현한다. 식구들이 좋아할 만한, 건강하게 할 만한 음식을 나름 고민해서 장을 보고 열심히 음식을 준비한 나의 노고를 테레사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존중과 이해, 배려받고 싶다는 엄마 마음이 앞서 테레사가 어린아이지만 야속하다는 생각에 짜증 나고 화나고 섭섭하고 서운하다.


밥한상에서 사랑을

생각해 보면 나도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읍내에 다녀오는 길이면 항상 버선발로 뛰어나가 부모님의 양손을 살폈다.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은 부모님의 빈손을 확인하거나 내가 원하는 음식이 손에 들려있지 않으면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서러운 눈물을 흘리며 나 또한 테레사와 다르지 않게 <히잉 히잉> 거리며 마음이 풀릴 때까지 불편한 마음을 표현했던 것 같다. 놀아달라고 해도 싫다고 하는 엄마. 본인 공부하느라 항상 바쁜 엄마. 맛난 음식조차 요구하지 못하면 테레사가 나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읍내에 다녀온 부모님 두 손에 무겁게 들린 봉지봉지에서 사랑을 확인하고 봉지에 담긴 음식을 먹으며 마음속 사랑을 채웠던 나처럼 엄마가 해주는 맛난 음식이 테레사가 엄마에게 확인받고 싶은 사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테레사에게 <엄마 오늘 반찬이 모야?>라는 질문은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는 행위인 동시에 엄마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행위인 것이다.


불편함에서

과식을 하고 속이 불편할 때면 나는 항상 결심한다. 다시는 과식하지 말아야지. 소화 잘되는 음식만 먹어야지. 한 며칠을 조심하고 나면 편안한 위를 느끼며 안심하다가도 나는 다시 과식을 하고 만다. 왜 나는 반복해서 위의 불편함을 찾는 걸까. 과식으로 인해 속은 불편하지만 불편함을 호소하는 위로 인해 나는 오로지 내 존재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일 테지. 무료하고 지루하고 공허하고 무기력한 일상으로 내 존재가 희미해질 때면 나는 목구멍이 찰 때까지 먹고 터질듯한 배속 불편함을 오래도록 느끼면서 안심했던 것 같다. 불편한 고통 속에 또렷하게 느껴지는 내 존재에.


밥한상(음식) 의미

음식은 나를 즐겁게 하기도 하고. 내 욕심을 빠르게 채워주기도 하고. 나를 돌보는 방법인 동시에 누군가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하나의 도구이며, 무엇보다도 가장 빠르게 나와 너의 존재가 세상에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강력한 도구이다. 마음이 허기져 배까지 고플 때, <따뜻한 밥한상>으로 존재의 굶주림을 채워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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