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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다의 작은섬 Aug 13. 2023

휴가

고향과 나의 거리(2023.8.7. 월)


5시 30분 vs 5시간 30분

차 막힐까. 5시 30분, 이른 새벽부터 길을 나섰다. 4년 만인가? 차를 직접 운전해서 본가를 가는 길이.. 물론 운전은 요셉이 하지만 오랜만에 달리는 고속도로가 반갑다. <참 잘도 잔다.> 아녜스가 어릴 적, 가깝지 않은 거리를 가는데도 내내 잠들지 않는 아이를 보며 혀를 내둘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차울림을 요람 삼아 참 잘도 자는구나. 연일 폭염경보를 알리는 재난문자, 하늘은 높고 푸르고.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은 뜨겁다 못해 따갑다. 달리고 달려도 좀처럼 닿지 않는 거리, 5시 30분을 가리키는 숫자만큼 5시간 30분을 달려야 도착할 테지.


방학 vs 휴가

아이들은 방학이면 다른 휴양지로 휴가를 가는 대신 외갓집을 간다. 올해는 유독 둘째, 테레사가 서운해한다. 그리고 외갓집에 내려가기 전 외할아버지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할아버지 펜션 잡아놔(예약)! 알았지?!" 아녜스 학원 스케줄과 나의 개인적인 스케줄로 이번에는 본가에서 이틀밤만 자려고 한다. 매번 외갓집에 갈 때면 찾았던 남해 상주해수욕장, 빠듯한 시간과 폭염으로 해수욕장을 찾기엔 많이 억지스럽다. 혹시나 해서 수영복, 튜브 외 물놀이 용품을 챙겼다. 우리 테레사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한껏 기대하는 눈치다.


"테레사, 시간도 없고 폭염으로 해수욕장 못 갈 수도 있어. 알겠지?" 다짐에 다짐을 했건만, 우리 테레사 외갓집에 도착하자마자 할아버지에게 펜션을 예약했는지부터 확인한다. '할아버지가 예약하려고 했는데, 이미 예약이 꽉 차서 리가 없더라' 아빠는 펜션이 무엇인지 아셨을까? 하지만 손녀의 무리(?)한 요구에 능숙하게 대응한다. 이틀 밤만 자고 돌아가야 한다는 말에 부모님은 벌써부터 서운하시다. 오랜만에 보는 손녀들과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어서. "어젯밤에 아빠가 욕을 욕을 하더라. 멀리 시집가서 손녀들도 보고 싶을 때 마음대로 못 보게 한다고"



새집 vs 헌 집

아버지는 한평생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 읍내에 있는 작은 아파트로 이사하셨다. 부모님이 4월에 이사하셨지만 사는 게 바빠 이제야 찾아뵙는다. "생각보나 아파트가 깔끔하다. 재활용 수거함 정리도 잘 되어있고" 아파트를 둘러본 요셉이 안심하듯 한마디를 건넨다. 요셉과 나는 부모님이 연식이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했는데.. 걱정했던 것보다 집도 잘 구하셨고 집수리도 잘하셨다. 앞 베란다로 아침해가 인사를 하고 뒷베란다로 지는 해가 고개를 숙이니 부모님이 환한 곳에서 환하게 지내실 것 같다. 특히나 뒷베란다로 보이는 하늘과 노을이 정말 아름답다. 이곳에서 저 하늘같이 사셨으면 좋겠다.


자기야, 아빠엄마가 이사한 집 있잖아. 나 중학교 다닐 때 버스 타고 지나갈 때마다 <저 집들 참 좋다> 생각했던 집이었거든, 세상 참.. 이제야 들어와 보네. 꿈이 이루어진 걸까?ㅋㅋㅋ


요셉과 아파트 앞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며, 바로 오른쪽에 공설운동장이, 정면으로 공원이, 왼쪽으로 5분 거리에 농협하나로 마트가 있어서 부모님의 생활환경이 편리해진 것 같아서 참 좋다고 생각을 했다. 특히나 읍내로 이사하시고 병원이나 성당, 시장을 걸어서 다니시니 부모님의 만족도가 높다. 처음 고향을 떠나 멀리 이사하신다고 하셨을 때 나는 많이 반대했더랬다. 아버지는 자식들의 반대는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기어코 제 뜻대로 고향에서 좀 더 멀리 떨어진 바닷가 근처로 집을 알아보셨고, 그곳에서 몇 달 세입자로 사셨다. 아버지는 몇 달을 살아보시고, 본인도 낯설고 불편하셨는지 익숙한 고향집 근처 읍내로 다시 이사하셨다. 읍내로 이사한 뒤 어머니는 신나셨다. 읍내에 볼일이 있어도 교통편이 불편해서 잘 다니시지 못했는데 이젠 성당이며 시장이며 걸어서 다니니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아버지는 아직 아파트 생활이 익숙지 않아 불편하지만, 적응하려고 노력하신다고. 그래, 그렇게 평안하시길



빨간 대야 vs 해수욕장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니 <왜 해수욕장을 가지 않느냐>며  테레사의 투덜거림이 시작되었다. 분명히 약속하지 않은 약속인데, 약속이 돼버린 듯 칭얼거린다. 내리째는 폭염에 도저히 해수욕장은 못 가겠다. 궁여지책으로 시골집에서 물놀이를 하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30년이 넘은 묵은 살림살이가 다 빠지고 새롭게 도배와 장판을 한 시골집이 낯설다. 사람이 살지 않은 흔적이 마당곳곳에 잡풀로 남았다. 아버지가 가끔 오셔서 이것저것 손보신다고는 하지만 사람이 난 자리를 메워나갈 수는 없는듯하다. 터벅터벅 옥상에 올라갔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하늘과 경치만큼은 그대로 인 것 같아서 참 안심이 된다. 실컷 물놀이를 하고 시골집을 나섰다. 시골집이 팔리면.. 지금이 마지막일 수도 있는 그 순간을 나는 가차 없이 돌아섰다. 자꾸 남겨지는 미련을 애써 떨쳐버리려고.




만남 vs 이별

항상 그랬다. 본가에 가는 길은 큰 마음을 먹어야 하는 일, 혼자 다니로 가는 길보다 온 식구가 모다 내려가는 일은 그 마음이 더하다. 이것저것 신경 쓸 일도 많고 가는 길도 머니 부모님을 만나로 가는 길은 거리만큼이나 더디다. 도착하자마자 떠날 준비를 하건만 더딘 마음이 이별을 앞두고는 진득하니 붙어 또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매년 반복되는 만남과 이별이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몸은 길을 따라나서 집으로 돌아왔건만 마음은 아직이다. 부모님도 나도 한동안 마음이 집을 찾아가려면 부산스러울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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