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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다의 작은섬 Aug 31. 2023

「시절인연」

첫사랑(2023.8.31. 목)



이은호 작가님의 <시절인연>은 나의 아버지, 어머니, 삼촌, 아재, 이모, 고모가 한 번쯤 어봤을 법한 엉큼하기도, 아련하기도, 애석하기도 했을 첫사랑이야기예요. 10편의 사랑이야기의 배경이 대부분 70~80년?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그땐 그랬지>하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책을 읽으면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첫사랑의 향수와 함께 특히, 그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지 않을까? 생각해 봐요.


나는 <시절인연>에 기록된 10편의 사랑이야기 중 3편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첫 번째 이야기는 현수를 주인공으로 한 <원더풀 달동네>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현수의 눈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사랑이야기예요. 사춘기 소년이 창호지를 뚫고 본 어른들의 사적이고 아주 농밀하고 은밀한 사랑 나눔, 현수는 나쁜 짓이라도 한 것 같아 그대로 줄행랑을 쳐버립니다. 어린 시절 한 번쯤을 겪어봤을 법한 아주 은밀한 경험을 떠오르며 나도 현수가 되어 같이 도망쳐요.


<원더풀 달동네>에서 특히,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지금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셋방아저씨들 도둑질 망보기, 부모님이 범죄자임을 알면서도 먹고살기 위해 세를 놓는- 달동네에서 커가는 현수의 이야기예요. 먹고사는 것이 더 중요해서 더 중요한 것이 뒷전이 될 수밖에 없었던 시절, 셋방에는 범죄자가 살고 주변 환경이 현수가 올바르게 성장하기엔 참 좋지 않은 환경이지만, 저는 이상하게 현수가 훌륭한 어른으로 자랐을 것 같아요. 현수이야기를 읽고 역으로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 곪아서 힘들어하는 시대는 아닌데 왜 아이들은 더 불행한 것 같고,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지만 왜 어른이 되어서도 <성인이 된 아이들만> 많은 것 같을까?


<7p 현수가 사는 변두리 달동네 사람들의 사정은 대개가 비슷하였다. 하루 세끼는 고사하고 두께만 먹을 수 있어도 살만했다. 보얀 쌀밥이 아니고 쌀이나 밀가루 한 주먹에 시장에서 주워 온 우거지나 거저 사 온 비지찌개를 잔뜩 넣고 비슷한 식사였는데 그거라도 배불리 먹었으면 소원이 없을 정도로 달동네 아이들은 굶주림에 허덕였다.> 이은호 작가의 사랑이야기 배경에 깔려있는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런 서술적 표현이 나는 참 좋았다. 그 시절을 상상할 수 있어서. 이상하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 어려운 시간을 살아낸 사람들에게.


<종이학> 학교 다닐 적, <학>한번 접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ㅋㅋㅋ 천마리는 아니지만, 저도 꽤 접었던 것 같아요. 거북이도 접었는데.. 지금 우리 둘째, 테레사가 소꿉장난할 때 음식재료로 쓰는 종이학은 요셉이 총각시절에 접은 종이학이에요. 지금은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시진 않지만, 어린 시절엔 담배를 피우셨어요. <종이학>의 주인공 동철이 특히나 좋아했던 종이, 담뱃갑 은박지! 저도 접어봤어요. 담뱃갑도 좋았지만 껌종이! 크윽 껌을 감싸놓은 은박종이에서 은박지만 벗겨내서 접었던 은박, 금박 종이학, 그 추억이 떠올랐어요.


79p... 특히 종이 접기에 딱 좋은 것은 바로 담뱃갑이었다. 동철 아버지가 하루에 한 갑씩 담배를 피웠는데 빈 담뱃갑의 바깥쪽 반지를 반지란 종이도 좋았지만 안쪽에 담배를 감싼 은박속지가 종이 접기에는 딱이었다.


<고등어 한 손>을 읽었을 때, 떠오르는 중학교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주근깨 가득한 얼굴에 참 맑고 웃음이 예쁜 친구였어요. 공부도 참 잘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시골동네, 몇 학교도 없었지만 우리 학교는 중고등학교가 같은 재단이어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중학교를 졸업하면 자연스레 앞 동(?)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돈을 벌면서 공부를 하는 기숙사-직업형 고등학교(명칭이 생각이 안 나네요..)로 진학했어요. 그 친구가 기억에 선명한 것은 참 캔디 같은 친구였기 때문이에요. 가난해도 당차고 당당했어요.

172p 장신 말로는 공부를 잘해서 어떻게든 대학교를 서울로 보낼 것이라고 했다. 자기가 공부 못했던 것을 동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하였다... 중략... "사실 나 중학교 다닐 때 친구는 너밖에 없었다. 나에게 공부도 가르쳐주고 맛있는 도시락 반찬도 나눠주고 동생들 과자도 사주고 그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동생들도 내가 준 과자 받아주면 얼마나 좋아했는데 그때는 과자 한 봉지 맘대로 사 먹을 형편이 못됐다."


이은호 작가님의 <시절인연>을 다 읽고 저도 제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리다가 그 시절의 제 삶을 엿보았습니다. 당시 내가 입었던 교복, 만났던 친구들, 걸어 다녔던 길거리, 타고 다녔던 버스, 사춘기 소녀가 비밀스럽게 찾던 장소, 당시 내가 했던 최고의 일탈, 첫사랑 못지않게 좋아했던 연예인 책받침... 제 첫사랑을 살짝 적어보자면 시골아이가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갔습니다. <버스에서 만난 그 오빠, 참 잘 생겼다> 그 오빠 쫓아다니느라 공부(?)를 안 했어요.ㅎㅎㅎ 그것이 제일 아쉬워요. 그때 공부를 좀 했어야 기초라도 알았을 텐데.. 지금도 기본기 없는 수학, 영어만 생각하면 그때 그 시절의 제가 생각납니다. ㅎㅎㅎ




이은호 작가님은 30년의 직장생활을 마무리하시고,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작가의 꿈을 이루었어요. 참 멋지다고 생각해요. 어릴 적부터 품고 품으면서 간직하고 있었을 작가의 꿈, 여러 가지 이유로 오랜 시간 그 꿈을 접어두고 고이고이 간직했을 작가님, 작가님 속에는 얼마나 많은 상상들이 고이고이 간직되어 있을까요? <시절인연>, 이제 시작이시잖아요? 앞으로 어떤 작품들이 나올까? 무척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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