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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다의 작은섬 Jan 01. 2024

나의 우울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최선의 우울」

그래도 괜찮아(2023.12.30. 토)



괜찮을 줄 알았지. 이번 학차가 마무리하고 나서도 번아웃(?) 올 줄 누가 알았겠어. 나름 만족스러운 학교생활이었거든. 근데 뭐가 문제야?! 도대체? 아무리 생각해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없어서 답답해. 그냥 <의욕상실>이야. 아무것도 하기 싫고, 자꾸자꾸 뭘 잊어버려. 약속한 독서모임도 잊어버리고, 보내달라는 서류도 보내지 않고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 같다니까! 나 너무 열심히 살았나 보다. 그래도 다행이지 모야?! 허기진 사람처럼 책은 마구마구 읽고 싶다. 과제하느라 시험공부하느라 도서관을 찾을 때, 내가 다짐하고 또 다짐했거든 '방학만 해봐라! 읽고 싶은 책 왕창 쌓아놓고 하루종일 도서관에 가서 딴짓할 거야!'라고! 읽고 또 읽고 있는 나를 보면 무엇이 그토록 두려운 걸까? 안쓰럽기도 하네

이런 상태일 때 제일 힘든 건 생각이야. 내가 하는 생각은 온통 비판적이고, 남들이 건네는 말도 모두 색안경을 끼고 듣거든. 그냥 건네는 한마디 말에도 비뚤어진 의미를 부여하고 아파하고, 의심하고, 속상해하고, 서럽고, 화가 나고 그래.. 그래서 점점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아 동굴 깊숙이 숨어버려. 이런 내 모습도 들키고 싫고, 상처받기도 싫으니까. 나의 우울은 이런 얼굴이야. 넌? 너의 우울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어?


안녕하세요. 글로 상담하는 상담사 아가다입니다


*MMPI심리검사 자격을 위한 워크숍을 들었어요. 그때 강의하시는 교수님께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우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울할 때 어떻게 하시는지? 만약 상담자가 우울을 건강하지 못한 것, 경험해서는 안 되는 것, 우울은 불행한 것, 내 삶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내담자의 우울도 그런 눈으로 바라본다고. 상담자 자신이 우울을 인정하지 않는데 어떻게 내담자의 우울을 존중하겠냐고. 병리적인 우울장애도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우울을 경험하며, 우울을 건강하게 경험하도록 돕는 것이 상담자의 역할이다'라고 했습니다.


우울은 몸이 아플 때도, 마음이 아플 때도, 호르몬 이상일 때도 찾아와요. 누구나 우울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매일 햇빛도 보고, 운동도 하고, 사람을 만나도 도통 제 뜻대로 되지 않는 몸과 마음, 제일 답답하고 힘든 사람은 당사자겠지요. 


전 주기적으로 무기력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 제일 힘든 것은 '나는 왜..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들입니다. 스스로 끊임없이 자신을 평가하는데 누군가 건넨 한마디조차 평가라니.. 그래요. 꼭 우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하나쯤은 내 몸과 마음인데도 내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 있잖아요. 알지도 못하면서 '의지가 약하다고, 어른이면 이쯤은 이겨내야지'라고 말한다면 전 왠지 <절교>할 것 같아요. ㅋㅋㅋ 어떻게 해야 힘든 일이 있어서 오뚝이처럼 일어나고 우울(무기력)쯤은 이겨낼 수 있는 의지가 생길까요? 웃는 것을 보지도 배우지도 못한 아이가 웃을 수 없고, 우는 것을 배우지 못한 아이는 울 수가 없습니다. 배우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것을 해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국화씨앗을 가지고 태어난 국화가 장미꽃을 피우려는 것과 같아요.


'내가 보기에 나는 죽는 그 순간까지 우울해 죽어 가도록 태어난 인간이다. 그 우울함을 가장 오랫동안 잊을 수 있는 수단이 글이라면, 그러지 못할 이유도 없다. 쓰는 수밖에 없다._본문 155p'


정신분석의 아버지 지그문트 프로이트, 분석심리학자(MBTI 이론적 배경) 칼융, 개인심리학(미움받을 용기의 이론적 배경) 알프레드 아들러, 여성심리학 발달에 큰 역할을 한 카렌 호나이 등 수많은 심리학자들의 생애를 살펴보면 왜 그 이론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됩니다. 그들이 각자의 삶에서 겪은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고, 그 노력의 결과가 바로 그들의 이론이니까요. 이묵돌 작가님이 오래도록 글을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읽어야지 나의 우울을 잊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MMPI : 미네소타 다면적 인성 검사 [ Minnesota Multiphasic Personality Inventory ] 요약 개인의 성격, 정서, 적응 수준 등을 다차원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개발된 자기 보고형 성향 검사 [네이버 지식백과] 미네소타 다면적 인성 검사 [Minnesota Multiphasic Personality Inventory] (심리학용어사전, 2014. 4.)




최선의 우울/이묵돌/일요일오후/230p/에세이


6p 우울 속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철저히 혼자가 된다... 중략... 그런 말들로 충분히 나아질 정도의 사람이라면, 애초에 높은 회복탄력성을 타고났다고 보는 쪽이 설득력이 있다.


19p 가끔은 우산을 챙겼는지와는 관계없이 흠뻑 젖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최선을 다해 젖어가는 수밖에 없을 때가 분명코 오게 된다는 것이다.


80p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 있게 말한다. 그건 네 마음에 달려있다고, 마음을 굳게 먹으라고, 즐겁다고 생각하면 즐거워진다고... 중략... 반면에 나는 내 마음이 내 맘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마음속으로는 이미 해내고도 남았어야 할 일들이 풀리지 않을 때, 금방 나아질 줄 알았던 것들이 오랫동안 차도가 없어 보일 때, 사소한 일들에 지나치리만큼 흥분하거나 무기력해질 때, 지나고 보면 별것도 아닌 것들에 잔뜩 긴장하게 될 때, 나는 나약하고 위태롭게 태어난 스스로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토록 하찮은 존재인 나 자신 앞에서, 나는 더욱더 작은 존재가 된다.


91p 우리의 우울한 시대를 설명학 위해, 무한경쟁이라는 표현은 슬슬 묻어두는 것이 좋겠다. 우리는 더 이상 경쟁다운 경쟁도 하지 않는다. 경쟁에는 적어도 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타인이 누군지 궁금해하지 않고, 알아야 할 필요성도 전혀 느끼지 못한다. 한때 무한한 경쟁이 있었던 그곳에는 이제 배제하느냐, 배제당하느냐 하는 무한배재의 원칙만이 남았다.


105p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되면 불행 해질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반면, 어떻게 돼야 행복해질지에 관해서는 매우 추상적이고 흐릿한 이미지로밖에 떠올리지 못한다.


107p 하루키가 정의한 소확행이란 그렇다... 중략... 가짐으로써 느끼는 것이 아니라, 느낌으로써 가질 수 있는 것에 가깝다. 이것은 없는 것을 새롭게 구하거나 만들어내야만 하는 게 아니다. 이미 갖고 있었지만 느끼지 못했던 것을 똑바로 인지하는 일이다.


109p 행복에 대한 기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주위 환경에서 후천적으로 학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불행의 기준도 합니다. 당장 겉보기에 초라한 삶을 보면, 가지지 않아도 느끼는 행복보다도 가지지 못해서 느껴야 할 불행을 먼저 떠올린다.


115p 사지 멀쩡한 삶에 변함없이 감사하며 산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한껏 슬퍼보아야만 안온한 삶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듯.


155p 내가 보기에 나는 죽는 그 순간까지 우울해 죽어 가도록 태어난 인간이다. 그 우울함을 가장 오랫동안 잊을 수 있는 수단이 글이라면, 그러지 못할 이유도 없다. 쓰는 수밖에 없다.


167p "햇빛도 보고 사람들도 만나고 운동도 꾸준히 하면 나아질 거야. 약에 의존하는 것 좋지 않으니까 조금씩 줄여보자고" 같은 말들을 한다. 웃기지 마라. 나는 매일 햇빛을 보고, 사람도 만나고, 운동도 한다. 노력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울하고 죽고 싶은 마음이 들뿐이다. 병에 걸려 이런 상태인 것이 왜 잘못이 되는가? 나라고 병에 걸리고 싶어서 걸린 게 아닌데.


179p 부작용인지 뭔지 약을 먹고 잠든 다음날에는 상당 시간 몽롱하고 어지러운 느낌이 있다. 그럴 땐 나도 모르게 표정 없는 얼굴로 멍하니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것이 제삼자의 시선에서는 '무슨 일 있나' 싶을 만큼 음울하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184p 그런데 많은 사람은 '우울하다'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생각해주지 않는다. 모종의 신호로 받아들인다. 당장 날 위로해 달라거나, 내게 도움이 돼달라거나, 의지할 사람이 필요하다거나, 우리 관계에 아주 심각한 문제가 불거졌다거나, 너와는 그다지 즐거운 이야기를 할 기분이 아니라거나, 지금 내 기분이 낮게 하지 못하면 네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겠다거나.....


193p 우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말은 어렵다. 우울의 모든 것을 이해하라는 명령은 더 어렵고 억지스럽다. 사실 우리는 계속해서, 죽을 때까지 우울을 공부해야 할지도 모른다. 기껏 어른이 되었는데 공부라니? 그런 어른들에게 조금의 위안을 주기 위해서, 나는 그저 우울이 거기에 있다는 정도로 시작해보려고 한다. 그렇게 연습해 보기로 하자.


201p 사람들은 줄곧 욕망이 인생을 망쳐버린다고 믿는 것 같지만, 실은 욕망이야말로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핵심이었다. 우울장애가 심각한 단계에 이르자 나는 아무것도 욕망할 수 없었다. 그저 나라는 존재가 증발해 사라지는 상상을 하루에도 열두 번씩...


207p 내가 사 온 재료로, 내가 조리를 해서 나 스스로를 먹여 살린다는 것, 그렇게 번거로운 일들이 모이고 쌓여서,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만든다... 중략... 궁금적인 해결책을 찾기보다 의미 없이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쪽이 나았다는 정도다... 중략... 해결해 보려는 노력은 못 할지언정 날 더 우울하게 만드는 일은 하지 않는 것. 내가 생각하는 빼기의 미덕이다.


218p 나는 우울하지 않는 삶을 믿지 않는다. 행복한 삶은 존재하지만, 행복하기만 한 삶은 동화 속에나 있다. 불행이 존재하는 한 행복이 존재하듯이, 우울의 존재야말로 기쁨의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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