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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다의 작은섬 Jan 21. 2024

이제야 2023년을 마무리하고 2024년을 맞이하며

흐르는 삶(2023.1.21. 일)


2학기를 마치고, '번아웃', 단골 같은 손님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나는 머리는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마음에 있는 모든 감정은 휴가를 떠난 듯.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무념'의 상태가 돼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떠나가는 2023년의 그 무엇도 정리하고 싶지 않고, 다가오는 2024년은 아무런 계획도 하기 싫었다. 그 모든 행위가 나를 닦달할 것만 같았기에, 이번만큼은 아무것도 닦달하지 않고, 무념의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보기로 했다.


나답게, 의미 있게, 지혜롭게, 행복하게, 책임감 있게... 수많은 수식어가 붙은 삶을 살기 위해 공부하고 또 공부하면서 머리가 이해한 만큼, 마음이 머리를 쫓아가지 못했다. 머리는 계속 배운 대로 살려면 <~ 해야 하는데>라고 마음을 채근하고, 마음은 머리를 쫓아가지 못해 항상 '조급하다'. 김수환추기경은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오는데 70년이 걸렸다'라고 말했다. 나에게 '번아웃'이란 그런 시간인가 보다. 머리로 이해한 것을 마음으로 느끼는 시간.





2023년 2학기에는 성격심리학, 행동수정, 심리진단 및 평가, 집단상담을 수강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부터 빅터프랭클의 의미치료까지, 12개의 학자별 성격이론을 배웠다. 책의 첫 장 맨 앞페이지에 기록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조사되지 않은 삶은 가치 없는 삶이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인간은 삶을 살아가는 내내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와 '너는 누구인가?'에 관심을 가지며 살아간다. 학자들의 모든 이론은 이에 대한 나름의 답변이었다. 성격에 대한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는 인간의 성격은 '보편적인 동시에 독특한'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의 모습도 이와 닮았다.


행동이란 개인이 말하거나 행하는 어떤 것을 말하고, 행동수정은 행동을 변화시키도록 돕기 위한 절차를 개발하고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행동수정가들에게 모든 행동은 잠정적으로 관찰 가능하다. 예를 들어서, '저 학생은 학교 생활 태도가 좋지 않다'에서 태도는 행동으로 보기 어렵다. 하지만, 행동수정가들에게 불성실한 학교생활태도는 '학교에 자주 결석하고, 숙제를 해오지 않는, 선생님에게 대드는' 관찰 가능한 행동을 말한다. 으앗! 뭐 이렇게 쉬운 말을 어려운 용어로 설명해 놓았는지! 행동이론 학자들은 인간의 모든 행동(내적, 외적)은 관찰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인지 정말 철저하게 논리적, 분석적, 과학적이다. 공부하는 내내 용어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행동이 강화와 보상으로 이루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아, 참 공부하는 동안 <도둑맞은 집중력>을 함께 읽었는데 행동수정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심리진단 및 평가, 와우! 2학기는 이 과목만 공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공부했다. 조별과제로 종합심리검사(Full Battery) 실습이 있었다. 특히, 조원들과 마음을 맞추고 역할을 정해서 과제를 진행하는 것이 어려웠다. 여럿이서 함께 하는 활동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역할 분담책임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심리평가란 '한 사람의 심리적 특성을 이해하기 위한 일련의 전문적인 과정으로, 심리평가 과정은 심리 검사, 면담, 행동 관찰로 구성되며 정신 병리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된다.'(심리검사의 이해/시그마프레스/최정윤) 심리검사 실습을 마치고, 심리검사결과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병원에 가면 멀쩡한 사람도 그 사람의 의도에 따라 다양한 병리적 진단이 나오기도 하고, 의도하지 않아도 병원에 갔으니 병리적 진단에 내려지기도 하는 것처럼, '아, 한 사람 '바보'만드는 건 일도 아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사람을 위한 '사람공부'의 중요성을 더 인식하는 기회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집단상담은 나에게 참 편안하면서도 불편한, 양가감정이 공존하는 배움이었다. 모든 수업이 실제 집단상담으로 진행되었는데, 수업시간 내내 '나의 마음에 대해 질문'하고, '너의 마음에 대해 듣는' 시간이었다. 수업이 끝날 때마다 그날 수업소감을 A4용지 한 장씩 작성해야 했는데, 그때마다 본연의 나를 만났고, 많이도 울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들도 나와 별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구나.' 나와 비슷한 고통을, 나와 비슷한 고민을, 나와 비슷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동기들을 보면서 평안함을 느낀 동시에 마주 보고 싶지 않은 나를 마주 보는 불편함이 공존하는 수업이었다.


2학기를 보내면서, 기억하고 싶은 것들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동기와 함께 공부하는 즐거움. 한동네에 사는 동기 선생님과 함께 도서관, 카페, 스터디 카페에서 새벽까지 공부했다. 혼자 공부했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하고, 하고 싶은데 그 과정이 힘들고 어려우니 하기 싫어서 미루고 미루었을 공부가 함께 공부하니 어떻게 해서든 하게 되고, 힘들고 어려운 과제도 쉽게 풀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함께한다는 든든함. 동료의 끊임없는 지지와 격려가 참 큰 힘이 되더라. 또 다른 하나는 '할 수 있다'를 계속 되뇌니 정말 할 수 있게 되더라. 한꺼번에 많은 일이 감당할 수 없게 쏟아진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바보인가? 나약한가> 보다 '할 수 있다'라고 속삭였다. 그 덕분에 무사히(?) 2학기를 잘 마쳤다.





9-12월까지,  학교공부 외에도 >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 <당신이 알던 MBTI는 진짜 MBTI가 아니다> <당신의 삶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무의미의 의미> 독서모임 진행하였고,  푸른 새벽님의 <상처받은 내면아이> 스터디 모임에 참여하였는데 11월 이후에는 너무 바빠서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다. (아쉽 ㅠㅠ) 그리고 <양육코칭 2023 하반기학부모자율기획연수>참여했다. 현재 나의 양육에 대해 점검하고, 새로운 양육 모델을 세우기 위해 매주 금요일마다 2시간씩 10주간의 시간 동안 양육코칭을 받았다. 이 시간을 통해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양육에 있어서 어떤 부분이 제일 힘들어하는지,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등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양육코칭을 통해 나는 나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좀 더 다가가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아이들을 대함에 있어, 내가 좀 덜 화가 나고, 우리가 좀 더 웃는 날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10월에는 낭독클럽과 책바라기 독서모임에서 '나는 내 삶의 로고테라피스트 <나>만의 로고세러피'라는 주제로 의미치료에 대한 강의를 하였고, 11월에는 'MBTI와 소통_부모, 감정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학부모연수 강의를 했다. 이 밖에도 HP학교폭력예방교육 강사 교육을 받고 보조강사로 활동하였고, 리딩맘 활동도 하였다.


그리고 작년에 합격에 청소년상담사 3급 수련을 받고 9월에 온전한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고, 12월에는 MMPI 워크숍 교육을 듣고 구매 및 해석 자격을 갖추었다. 학교 행정조교로 지원하였다가 떨어지기도 했고, 인턴상담사에 지원하고 좋은 소식을 듣기도 했다.





2023년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부모님과의 관계였다. 이젠 좀 괜찮아지나 싶은 희망이 생기다가도 반복되는 좌절에 무척 고통스러웠다. 부모님을 생각하면 '이만큼 키워줬는데, 뭐가 그리도 원망스러우냐? 네가 지금까지 부모에게 받은 것이 상처뿐이더냐?' 하는 죄책감과 '내가 무엇이 그렇게 잘못했기에? 부모가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라는 서러움이 공존한다. 부모님과 나의 관계가 풀 수 없는 '고르디우스의 매듭'같아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하다. 2023년 마무리도 2024년 시작도 하지 못한 이유 중 제일 큰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평생 닿지 않을 평행성 위를 걷는 것 같다. 이 마음을 더 깊게 들여다보기 위해서 나는 아직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처음 경험해 본일

아이들과 함께 처음으로 KTX도 타고 본가 가기

오빠와 올케, 조카가 처음으로 우리 집 방문


특별한 일

우리 아녜스 초등학교 졸업

우리 테레사 첫 영성체


2023년을 마무리하면서 든 생각은 아무것도 한 게 없을 줄 알았는데 많은 일을 했고, 특별한 날이 하나도 없을 것 같았는데 특별한 날들로 가득했다. 기억으로는 행복한 날들보다 고통스러운 순간이 더 많았지만, 그 모든 순간을 살아낸 내가 기특하고, 그 순간에 함께 있어준 가족과 돕는 천사(하느님, 친구, 지인, 책, 글 등)들에게 감사하다.





2024년 시작은 사회복지사 1급 시험대비공부였다. 몸과 마음이 박자를 맞춰가며 '하기 싫다'를 외쳐대는데, 머리는 끝까지 '할 수 있다'를 부르짖으며 '포기하지 않고' 시험을 치러냈다. 지금은 몸과 마음, 머리가 삼박자를 맞춰 '하느님 공부는 하지 않았지만, 제발 붙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며, 좋은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리고 1월부터 명지대학교 통합치료연구센터 인턴상담사로 활동 중이다.


학기 중에 수업시간과 겹쳐 참여할 수 없었던 비폭력대화 연습모임을 다시 시작하였고, 뉴 봄 독서모임에서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MBTI로 답하다.'라는 주제로 자기 확신을 위한_MBTI 무료특강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무의미의 의미 독서모임을 마무리하고, 가장 좋은 안식처 The_Book 죽음의 수용소에서_2기를 시작한다.


며칠 전 뉴스에서 '91년이면 30년이 지났는데'라는 앵커의 말을 듣고 뇌가 멈춘 듯 '멍'했다. '뭐라고 30년?!' 그 시간의 괴리감에서 한참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서성였다. 마음만은 언제나 28 청춘인 것처럼 사는 것과 마음이 언제나 28 청춘에 있는 은 그 차이가 엄청나다. 한해를 잘 떠나보내고 한해를 잘 맞이하기 위해선 지나간 시간을 충분히 애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사십이 넘는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알아버렸다. 불현듯 2024년에는 잘 떠나보내고 잘 맞이하는 흐르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2024년에는 머리로 이해한 것을 마음으로 느끼는 시간을 통해 흐르는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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