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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다의 작은섬 Mar 20. 2024

아니까 더 고단하다

살수록 담담해지길 기도해(2024.03.19. 화)


언니도 18일 전에 대청소 추천, 운을 여는 거 ㅋㅋ


운을 연다고? 뭘 좀 치워볼까? 친구의 한마디에 계획되지 않은 대청소가 시작되었다. 김치냉장고 뚜껑을 열어젖히고 하나씩 꺼내고 하나씩 버리고. 음식물쓰레기 1만 kg을 버렸다. Jesus!!!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청소는 앞 베란다, 뒤 베란다로 이어져, 내 하루를 야무지게 잡아먹었다. Yes! 대청소 제대로 했네!


(*음식물 쓰레기 1만 kg의 해명 : 인터넷으로 포기김치를 주문했는데 도저히 먹을 수가 없는 상태였음. 1년 가까이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겨우 정리함.ㅠㅠ)


청소를 하고 나면 쌓인 먼지가 날아가고 묶은 살림이 비워져 집이 산뜻해진 만큼 울적한 내 마음도 날아가고 비워져 개운해길 기대했건만. 오히려 울적한 마음 더하기 힘든 몸이 되어버렸다.(젠장) 괜히 시작했나? 몸까지 힘드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엄마는 오랜 공장생활 때문인지 천성적으로 약한 관절 탓인지 무릎관절이 좋지 않아 40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몇 차례 무릎관절시술을 받았다. 3번째 시술을 받을 때였던가 엄마는 나에게 무릎 시술받는 것이 '무섭다'라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나는 '처음도 아니고, 예전에도 몇 번이나 시술해 봤는데 뭐가 무섭냐'라고 타박했다. 본인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딸이 야속했던 엄마는 서운함 가득한 목소리로 '아니까' 더 무섭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으셨다.


고통은 안다고 안 아픈 것도 아니고, 한번 맞아봤다고 덜 아프지 않듯 한번 겪어봤다고 적응할 수 있는 것도 아닌가 보다. 시작하기도 전에 지쳐버렸다. 1학 차, 2학 차를 어떻게 지내왔는지 알기에 3학 차에 일어날 힘듦이 예상되어 겪기도 전에 버겁게 느껴진다. 4학 차 선배가 말한다. '4학 차에 비하면 3학 차는 아무것도 아니에요.'라고. 와~ 지금도 버거운데 한 마디가 더해졌네. 얼씨구나 좋다. 그냥 웃지요.ㅎㅎㅎ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다. 더 살아봐라. 더한 일도 많다.' 지금 마음상태로는 굳이 알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집어서, 친절하게도 알려주시는지. '알고 싶지 않아요. 모르고 살면 안 될까요? 힘든 일을 미리 알아야 하나요? 미리 알면 뭐가 달라지나요?' 일요일 저녁이 유독 힘든 이유는 다음 주에 일어날 고단함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볼 때면 내가 살아낸 고단한 세월만큼 아이가 살아내야 하는 세월의 고단함을 알기에 커가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안쓰럽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살아낸 세월이 많아질수록 앞으로 살아내야 하는 고단함이 보인다. 때론 모르는 게 약인데, 이젠 모를 수가 없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판도라는 호기심 때문에 상자를 열었고 상자에는 희망이 남았다. 나는 고단함 때문에 자주 주저앉지만, 다가올 고단함 속에 있는 희망이 알기에 오늘도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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