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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다의 작은섬 Mar 29. 2024

내 오래된 친구 중에 '해야 해'가 있다.

너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2024.03.29. 금)



'해야 해'
'오늘 할 일이 얼마나 많은 줄 아니? 서둘러
'더 노력해!'


오래된 친구 중에 '해야 해'가 있다. 이 친구랑 노닐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 친구에게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에도 불안하고 다그치는 사람이 없음에도 쫓기듯 조급해진다. 어떨 땐, 할 일이 산더미처럼 있는 것 같고, 무언가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뭔지 모르겠지만 미리미리 해 놓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하루가 마구마구 불안해진다.   


요즘 난 일기를 쓸 때 어제의 내가 하루 동안 한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기록한다. 오늘도 일기를 쓰면서 어제 한 일을 기록하고 기록한 내용을 차근차근 살펴봤다. 내가 해낸 일중에 그 일을 하지 않는다고 내 삶이 무너지거나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거나 세상이 무너지거나 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후부터 오늘 해야 할 일을 작성할 때, 오늘 꼭 해야 하는 일인가? 하고 질문하는 동시에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가? 하고 추가로 문한다. 우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 그 일을 하지 않아도 하물며, 하루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열심히 살지 않아도, 삶도, 세상도 무너지지 않는다.


'해야 해'는 나랑 자주 놀고 싶어 한다. 이 친구랑 놀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이 친구가 내 불안이 만들어 낸 두려움이자 내 무가치함을 증명하기 위한 '허상'이란걸 알면서도, 난 자주 '해야 해'에 사로잡힌다. 어제와 그제가 그런 날이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컨디션이 좋지 않아 신나게 쉬었더니, '해야 해'는 이때가 기회다 싶었는지 계속해서 날 부르고 또 불렀다. 미친 듯이 몰아치는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나는 또 '해야 해'랑 신나게 놀았다는 걸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난 '해야 해'랑 놀다가 지칠 대로 지치고 다크셔클이 바닥을 쳤다. 내 상태가 이럴진대, 이 친구는 한사코 날 놓아주지 않았다. 끝내 내가 눈물을 터트리고 나서야 친구는 슬며시 물러났다. 나쁜 것 ㅜㅜ


'해야 해'는 웬만해선 날 놓아주지도 않지만, 내가 가만히 앉아서 쉬는 꼴은 더더욱 허락하지 않는다. 피해도 보고 무시하기도 하고, 싸워도 봤지만 '해야 해'를 이길 순 없었다. 결국 난 이 친구가 지낼만한 공간 하나를 만들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무엇을 수용하려고 이렇게 애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수용하면 할수록 난 나에게서 자유로워진다는 사실을 여러 경험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이 애씀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애씀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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