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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다의 작은섬 Apr 08. 2024

확신 없는 친절

마음은 어디로...(2024.04.01. 월)


어젠 친구랑 작은 의견충돌이 있었다.

서로가 원하는 바가 다름에서 오는 아주 사소한 충돌이었다. 우린 각자, 생각의 다름에서 오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했지만 양보하기는 싫다는 듯 서로를 설득하려고 애썼다. <내가 너를, 네가 나를> 설득하지 못한 우리는 결국 '시간을 두고 좀 더 생각해 보자'라는 결론을 내리고 통화를 종료했다.


엄마의 전화통화를 듣고 있던 테레사는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자꾸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엄마가 전화를 끊자마자 언니에게 달려가 '언니! 엄마 너무 웃겨'라고 말한다. 테레사는 '뭐가 우습냐?'는 엄마의 질문에 '엄마가 통화하면서 자꾸 한숨 쉬어'라고 답하며 또 한 번 까르르 웃어댄다. 요 녀석, 엄마가 소신 있게 자기 마음을 밝히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쉬이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모양새가 마냥 재밌기만 했나 보다. 항상 저들 앞에선 단호한 엄마가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낯설 법도 했겠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들어줄 수 있는 일을 내가 너무 매정한가?

다른 면을 살피지 못하는, 한쪽면만 보는 외골수 같은 사람인가?


내가 느끼는 불편한 감정에 자신이 없다. 불편해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불편함을 느꼈다는 생각도 들고, 남들은 대수롭지 않고 'o.k.' 할 일을 나만 수용하지 못하나 하는 마음에 자책도 따른다. 더욱 마음에 차지 않는 건 나에게서 흘러나오는 확신 없는 '친절'이었다.


'싹둑' 무 자르듯 단칼에 친구의 바람을 거절해 버리는 친절하지 못한 행동을 할까 두려웠다. 내 바람을 이루면서 친구의 바람을 친절하게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친절하지도, 불편함 표현하지도 못한 채 어중간한 중간 어디쯤에 찡겨버렸다. 결국 이도 저도 할 수없었던 나는 어중감에서 오는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그 모양새가 어린아이 눈에는 퍽이나 웃겼던 모양이다.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본문 중> '이 어리석은 뱀이야 실로 바보 천치로 구나. 내가 물지 말라고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쉿 쉿 거리지도 말라고 하진 않았지 않은가?'

때로 삶 속에서는 성자라 할지라도 씩씩거려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결코 물 필요까지는 없다.


친절하다는 것이 내가 할 말 하지 않고 무조건 인내하란 소리도 아닌데, 친절하고 싶다는 것이 내 감정과 욕구를 외면하란 소리도 아닌데, 내가 상대의 바람을 못 들어주는 것이 상대를 무는 것도 아닌데, 난 무엇에 확신이 없었을까? 그 순간만큼은 누군가 허락해 줘야 화를 내든 거절 하든 수용하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친절하고 싶다는 욕망이 만든 '두려움'과 거절하는 방법(그도 아니면 내 의견을 전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한 '미숙함'이 합쳐져 확신 없는 '친절'이 되어버렸다.


친절하고 싶다는 마음은 어디에서 왔을까? 정신분석적 측면에서 내면아이 기준으로 따르자면 상대에게 인정받고 싶은, 버림받지 않기 위한 몸부림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난 요즘 나의 마음에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붙이고 싶지 않다. 이런저런 이유를 찾는 일에 지쳐버렸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를 찾다 보면 난 또 지금 이 순간에서 멀어진다. 오늘 느끼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단순하게 오늘을 살고 싶다. 난 친절하게 살고 싶다. 친절하지 않은 내 모습보다 나와 너와 세상에게 친절한 내 모습을 더 보고 싶다. 무엇보다도 친절하게 사는 건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이다. 단순하게 생각하자. 친절하게 살고 싶으면, 오늘 내가 친절하게 살 수 없었던 이런저런 이유를 찾기보다 친절하지 못한 순간이 있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계속 친절하게 살면 된다. 론, 나를 중심으로 한 나다운 친절함이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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