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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다의 작은섬 Aug 16. 2024

'나'로 바로 서고 싶다

일상생각(2024.08.09)


올 2월부터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계속 반복되는 '번아웃'을 혼자 해결할 수 없어서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4년 차 심리상담을 공부하고 있고 상담을 하고 있는 초보상담사지만, 막상 나 자신의 상담을 받으려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상담학회홈페이지를 통해 집에서 가까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상담사를 검색해보기도 했고, 먼저 상담을 받고 있는 동료선생님의 추천을 받기도 했다.


상담을 원하지만 상담사선생님에게 전화를 해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고, 모르는 사람에게 선뜻 전화를 해서 힘든 내 처지를 이야기하며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이 모든 과정이 낯설었다. 학회나 추천받은 상담사선생님 한두 분에게 전화를 했지만 영~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예민한 나 등장~! 참 까탈스러운 사람이다. ㅋㅋㅋ


한 달을 넘게 알아보다가 지쳐서(아니 뭘 한 게 있다고 지쳐? 생각만으로 지쳐버림) '이번 생은 상담 못하겠다.'라고 생각하던 차에 가족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할 때 인연이 닿았던 '선생님'이 생각났다. 하지만, 전화는 못하고 생각만 하고 있는데 정말 뜻하지 않게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음. 무엇 때문에 연락이 왔는지) 선생님과 통화를 하던 중 가족센터일을 마무리하시고 개인심리연구소를 시작하셨다는 소식이 생각났다.


다른 이가 볼 때, 나는 활짝 웃으며, 새로 만난 누군가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듯한 행동을 하는 사람처럼 여겨지지만, 난 겉보기와 달리 관계에서 그렇게 스스럼이 없지 않다. 오히려 반대다. 폐쇄적이고, 의심이 많고, 예민하다. 이런 경향이 있으니 처음 만난 사람의 낯섦에 대한 적응이 오래 걸린다. 그런데 가족센터에서 안면이 있었던 선생님이라 그런지 마음이 동했다. '선생님, 저 혹시 선생님께 상담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이렇게 상담이 시작되었다. 상담료가 제일 걱정이 됐지만, 마음이 한계에 이르러 일단 상담을 시작했다. 말하고 또 말했다. 선생님은 어느 때는 말이 많은 나의 말에서 정확하게 핵심을 붙잡아 나를 잠시 멈추게 해 주시고, 어느 때는 속 시원하게 말하게 나를 그냥 두었다. 3회기쯤인가? 선생님과 *인생곡선 그림작업을 했었다. 정말 놀라웠다. 내가 지금 내 삶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있고 어떤 시기의 생각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아직도 그 작업이 잊어지지 않는다. 그때 알게 되었다. 내가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렇게 10회기, 20회기가 넘게 상담을 받고 있다. 상담료에 대한 우려는 열심히 학교급식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해결했다. 사람이 뜻하는 바가 있으면, 모든 건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상담 20회기를 넘어선 현재 나는 거대한 문 앞에 서있다. 그 문을 열어야 하는데 아직 열지는 못하고 살짝살짝 노크만 하고 있다. 어젠 상담 중에 그 문 앞에서 펑펑 울었다. 상담사 선생님은 나에게 '이 문 앞에 오기까지 정말 애썼다고 잘하고 있다'라고 계속 격려하고 지지했다. 상담을 마치고 선생님과 상담소 정원에 있는 평상에 앉았다. 잡초가 무성했던 정원이 상담사 선생님의 손길을 거쳐서 화단과 돌길의 경계가 또렷해지고 다듬어진 잔디 사이로 돌길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지금 내 모습처럼. 계속된 상담을 통해 난 점점 경계가 뚜렷해지고 '나'가 선명해진다. 언젠가는 나에게서 자유로워지는 날이 올 것 같은 '희망'이 생긴다. 나에게서 자유로워지는 그 순간 나는 '나'로 바로 설 것이다.


센터에서 일할 때, 상담을 의뢰하신 분들과 통화할 때면 그분들이 하나같이 이런 질문을 한다. '상담이 뭐예요? 어떻게 하는 거예요?' 허참, 그렇게 공부했는데 이 질문 앞에서 나는 말문이 탁 막혔다. 어제 상담사 선생님이 나에게 해준 말이다.


줄탁동시[ 啐啄同時 ] : 닭이 알을 깔 때에 알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깨뜨리고 나오기 위하여 껍질 안에서 쪼는 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 깨뜨리는 것을 탁이라 함. 이 두 가지가 동시에 행하여지므로 師弟之間(사제지간)이 될 緣分(연분)이 서로 무르익음의 비유로 쓰임.  [네이버 지식백과] 줄탁동시 [啐啄同時] (한자성어•고사명언구사 전, 2011. 2. 15., 조기형, 이상억)


상담이 이와 같다. 어떤 사유로 인해 알이라는 곳에 갇혀버린 '나', 그 속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안에 있는 나도 껍질을 깨 드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밖에서 누군가 함께 노력해줘야 한다. 이때 안과 밖에서 깨뜨리기 위해 쪼는 지점의 합이 맞다면 그 효과는 배가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상담이다.


*인생곡선 : 자신의 과거와 현재 및 미래의 모습을 그래프나 굽은 선으로 표현하게 하는 미술치료기법



감사랑합니다. 글로 상담하는 상담사 아가다입니다





마음연구소 자연 - https://www.daangn.com/kr/business-profiles/마음연구소-자연-c9a5f4a2b9bc442eae10b220a953a2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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