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2025.05.29. 목)
<제인스틸>, 이 소설은 <제인 에어>를 스릴러 소설로 제 탄생시켰다는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마침 <제인 에어>를 읽고 있는 참이라 함께 읽고 싶어서 도서관에서 대출했다.
소설 속 여주공인 제인 스틸은 으리한 저택에서 떨어진 별채에 살고 있다. 스틸의 엄마는 저택의 상속녀가 스틸이라고 말하는데 왜 본채도 아닌 별채에서 '숙모'의 구박을 받고 살고 있는 걸까? 소설 뒷부분에서 그녀가 상속녀인데도 왜 별채에 살아야 했는지 그 이유가 나온다.(스포금지 ㅋㅋ)
스틸이 9살 때, 엄마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혼자 남겨진 조카를 숙모는 기숙학교로 보내려고 한다. 제발 이 저택에서 살게 해달라고 간청하지만 숙모는 그녀의 간청을 묵살한다. 숲 속에서 슬픔에 젖어 있는 그녀 곁으로 사촌오빠가 다가온다. 오빠가 그녀에서 몹쓸 짓을 하려던 순간 실수(?)로 사촌오빠를 살해하고 만다. 그것이 그녀의 첫 살인이었고, 범인으로 발각될 두려움에 스스로 기숙학교로 떠난다.
학교에 도착하고 첫날 나온 음식은 제인에어가 처음 기숙사 학교에서 맞이한 음식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훌륭했다. 그러나 그곳의 교장은 아이들에게 수시로 벌을 주며 밥을 굶겼다. 제인에어에서 교장의 악행이 드러나게 된 계기는 제인에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 헬렌 번스를 비롯한 많은 학생들이 학교의 열악한 환경에 의해 병들어 죽어가면서 이들의 죽음을 통해 세상에 알려져서였다. 그 이후 학교는 많이 개선되었고 제인에어는 그곳에서 졸업 후 교사로 근무하였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가장 사랑하는 친구 '클라크'가 교장이 준 벌로 인해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것을 보고 스틸이 음식을 훔치기 위해 교장의 비밀장부를 조작하는 도중 발각되어 뜻하지(?) 않게 두 번째 살인을 저지른다. 그리고 범죄가 발각될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며 친구와 함께 도망친다. 그 후 일어난 두 번의 살인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죽어 마땅한(?) 인물들을 살해한다.
이 소설에서 제인 스틸은 여성 연쇄 살인마이다. 소설 속에서 그녀는 살인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해서도 내내 무감각하다. 다만 자신의 범행을 짐작하는 경찰에게 잡혀 교수형에 쳐해 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느낀다. 그녀가 죽인 네 사람은 모두 여성에게 성폭력을 가하거나 신체적 폭력을 가하는 남성들이다. 저자는 그녀가 저지른 살인에 대해 경찰관의 입을 통해 정당성을 부여한다.
'내 말 똑똑히 들어요, 스틸양. 제대로 잘 들어야 됩니다. 여성이 극악한 공격을 받고 충격을 받아 아무 말도 못 했다고 해서 그 후 벌어진 사태를 그 여성의 탓이라고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지금부터라도 그런 생각을 버리도록 하세요. 알겠습니까?'
그러던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 찰스 손필드를 만나면서 심경의 변화를 느낀다. 그녀에게 경찰관은 더 이상 두려움의 존재는 아니었지만 '찰스 손필드' 란 남자는 그녀에게 평생의 사슬이 될 것이다. 죄의 사슬.
'내게 당신은 증인으로 보여요'
'찰스 손필드를 사랑하게 되면서 나는 빵조각처럼 작은 진실 조각들을 그의 길에 뿌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잭 고시를 칼로 찌른 일은 그가 이해한다 해도 그전에 저지른 네 건의 살인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
'찰스 손필드와 나는 완벽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지만, 적어도 서로에게는 완벽한 존재들이다. 어쩌면 삶의 마지막에 가서 우리를 묶은 사슬들은 세상 그 무엇보다 단단히 결박되어 있을지 모르겠다. 사랑하는 이의 죄수가 되어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할 수조차 없을 만큼 단단히 말이다.'
책을 읽으며 문득 작가의 의도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불현듯 나 자신의 삶이 떠올랐다. 아이를 낳고 난 이후, 나는 예전처럼 무대포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더 조심스럽고, 더 바르게 살아가려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예전엔 나 하나만 생각하며 살았지만, 이제는 나를 바라보는 작은 눈망울들과 나를 믿고 사랑해 주는 이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정직하게,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자주 든다. 아마 이것이 작가가 이야기 속 인물 ‘스틸’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감정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한 사람을 이렇게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 책임감과 성숙함은 결국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오늘 다시금 느꼈다.
작품 속 인물의 마음과 나 자신의 마음이 맞닿아 있음을 느낀 오늘의 독서는, 단순한 읽기를 넘어선 소중한 성찰의 시간이었다.
제인스틸/린지 페이 지음/공보경 옮김/스릴러 장편소설/문학수첩/573p
137p 아홉 살 때부터 죽어 마땅한 짓을 해왔고 죽음을 매력적인 개념으로 여겨온 나는 궁금하기 짝이 없다. 제인 에어 양은 '내가 과연 죽음을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는 사형을 당해도 쌀만큼 본인이 악독한 지를 묻는 질문일까 아니면 모진 삶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도 좋을 만큼 본인이 성스러운지를 묻는 질문일까? 만약 그녀가 죽고 싶어 한다면.... 죽을 자격은 있는 걸까?
155p 충고 하나만 해주마. 나도 그동안 사람들이 인생이라고 부를 만큼의 세월을 살아왔으니, 이 정도 충고는 해도 되겠지. 너 자신을 잘 대접하도록 해. 착하게 살고, 남의 방해를 받지 않는 잠자리에서 잠들어야 돼. 할 수 있겠니?
175p 제인 에어는 '인간은 이 세상에서 절대 완벽한 행복을 누릴 수 없어요'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그리즐허스트 부인의 배가 천천히 불러오는 동안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완벽한 불행을 겪으며 살지는 않으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283p 과거가 말 없는 스토커와 같다는 걸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평범한 가정교사로 보이도록 애쓰며 교실로 걸음을 옮겼다.
285p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살아야 하니까요. 평범한 속에 숨어 살되.
469p 비극적인 사건들을 함께 겪다 보면 유대감이 생긴다. 거짓말도 마찬가지다. 거짓말은 고통과 상처로 땋은 밧줄이 되어 우리를 옭아맨다. 그 줄이 느슨해지기 전까지는 그동안 얼마나 세 개 묶어 있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