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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다의 작은섬 Aug 10. 2022

마음은 20, 몸은 40.「이반 알리치의 죽음」

건강한 삶







『맹장 문제도 신장 문제도 아냐. 삶 그리고.... 죽음의 문제야. 그래, 삶이 있었는데 지금은 떠나가고 있는 거야. 떠나는 중이라고. 근데 나는 그걸 붙들 수 없어. 그래, 뭣 땜에 자신을 더 속여? 나만 빼고 모두 내가 죽어가고 있는 걸 알고 있잖아.』

(이반 일리치의 죽음 71p 래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반 일리치에게 죽음이 갑작스럽게 찾아옵니다.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는 바로 그때, 새집을 꾸미는데 한껏 열중하던 그때, 죽음이 예고도 없이 이반 일리치에게 다가옵니다.


집을 꾸미다 사다리에서 미끄러져 옆구리를 부딪치는 사고로 신장이 자리를 이탈하면서 이반 일리치는 죽어갑니다. 왜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 의사의 처방대로 하면 살 수 있을 것이란 희망, 죽어가는 자신과 달리 생명이 넘치는 몸을 가진 가족들에 대한 질투, 죽음이라는 현실 앞에서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광대같이 행동하는 가족과 지인들..


이반 일리치는 죽어가지만 그의 죽음을 겪는 사람들은 남의 집 이야기입니다. 자신에게는 영원히 죽음이 오지 않을 것처럼.. 그들에게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수많은 자리 중 한자리가 비워지는 것, 그리고 그 빈자리를 남은 사람들이 채우는 것일 뿐..


좋은 소식보다는..

언제부터인가 가계부 한 칸 경조사비 자리에 축일보다는 부고에 대한 지출이 더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요셉은 검은 양복을 찾는 날이 더 많아졌습니다.


장례식장을 다녀온 요셉

‘이제 우리 나이가 부고 소식이 더 많이 들릴 때인가 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발병하고 죽음은 나이 불문하고 갑작스럽고, 아픔 죽음이 늘어났습니다. 그렇게 죽음은 통계가 되고 일상이 되었습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아이고 삭신이야..’     


예전에 엄마가 지금의 내 나이쯤에 자주 하던 말입니다. ‘팔이 저리다. 무릎이 아프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씀을 자주 했습니다. 고단한 농사일, 몸 쓰는 일을 많이 하시던 엄마는 같은 동년배보다 일찍 무릎이 고장 나고 몸 여기저기가 아프셨습니다.


‘엄마, 몸 생각해서 적당히 일해야지. 왜 자꾸 미련하게 몸 생각을 안 하고 일을 하는 거야!’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일해도 되는데 체력도 되지 않으면서 일만 있으면 그 일을 하루 안에 무리해서 다 끝내려고 하는 엄마가 걱정되기도 하고 미련해 보이기도 해, 타박했습니다.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

제가 지금 엄마 나이가 되어보니 그 심정을 이해하겠습니다.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은 넘쳐나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새벽, 고요한 그 시간이 좋아 늦게 잠들어도 새벽에 일어나는 걸 포기하지 못합니다. 잠이 모자란 몸이 그만 좀 하라고 아우성치는데 애써 무시해 버렸습니다.


일하고, 공부하고, 책 읽고, 글 쓰고, 집안일하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지긋지긋한 비염

결국, 수요일이 한계입니다. 수요일쯤 되면 몸의 밸런스가 깨지면서 나의 고질병인 비염이 찾아옵니다.


새벽부터 시작된 훌쩍훌쩍, 끝내 꼭지 풀린 수도꼭지처럼 콧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쉬지 않고 연신 재채기를 해댑니다.


그때서야 미련한 저에게 화도 나고, 예전 같지 않은 몸이 현실로 다가옵니다.





『‘거짓말 그만해, 내가 죽을 거라는 건 당신들도 나도 알잖아. 그러니 제발 적어도 거짓말만은 더 하지 말아 줘’』

(이반 일리치의 죽음 87p 래프 톨스토이)     


영원히 젊을 것처럼

걷기만으로는 부족할 걸까?

더 열심히 운동해야 하나?

건강한 음식을 먹지 않아서일까?

음식에 좀 더 신경 써야 하나?


‘기미 생긴다’며 화장 좀 하고 다니라는 주변 사람들의 애정 어린 잔소리에도 젊은 시절부터 화장을 즐겨하지 않는 나는, 기미도 나의 일부요. 나이 들면 주름과 흰머리도 자연스러움의 일부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멋 떨어진 흰머리를 가진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 생각했습니다. 우아하고 자연스러운 주름을 가진 분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멋 떨어지게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내 몸이 나이 들어 내가 사용하는 에너지도 나이 들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나는 언제나 건강할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습니다.






『‘도대체 이유가 뭐야?’-중략- ‘왜, 왜 이렇게 험한 꼴을 봐야 하는 거야?’』

(이반 일리치의 죽음 109p 래프 톨스토이)     


내 몸에 내가 적응하는

신혼 때 마련한 전자제품 부속품들이 하나씩 고장 나듯 내 몸 장기들이 하나씩 고장 나는데도 젊은 시절처럼 ‘침’ 한번 바르면 금방 회복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아... 내 몸이 예전 같지 않구나.’     

책을 보는 눈은 예전만 못하고, 컴퓨터를 오래 보면 눈알이 빠질 듯 고통,

하룻밤 자고 일어나도 여전히 낫지 않는 감기,

오래도록 회복하지 못하는 과일 깎다 다친 베인 손가락 상처,






『“온 군데가 다 아파. 죽을 때가 된 겨. 그렇다니께. 아, 아, 아”』

(이반 일리치의 죽음 (세 죽음) 143p 래프 톨스토이)     


세 죽음

더 살고 싶은 귀족 부인, 자신의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마부,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나무, 톨스토이는 세 죽음을 통해 죽음의 태도를 이야기합니다.


빅터 프랭클을 말합니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고 누구나 죽음을 피해 갈 수 없지만 어떤 죽음에서든 그에 대처하는 태도는 각 개인이 선택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나이 드는 몸에 대처하는 나의 태도

처음에는 조금 피곤할 뿐이고, 쉬고 나면 금방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아지지 않고 계속 아픈 몸에 화가 났습니다.


‘할 일도 많은데 왜 이렇게 자주 아픈 거야? 아파서 이틀이나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아니야. 아니야.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건강해야지, 체력은 국력이다.’


열심히 운동하면 좋아질 거라고 착각했습니다. 한 번씩 마시던 맥주도 그만 마셔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운동할수록 몸이 건강해지기는커녕 주중 행사처럼 수요일만 되면 밸런스가 깨지고 지긋지긋한 비염은 계속 찾아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건강하게 잘 사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이렇게 저질 체력인 거야?’     

「마음이 흐르는 대로」 저자 지나영 교수는 자가면역질환을 앓으면서 자신의 몸 에너지를 잘 따져 하루하루를 보낸다고 합니다.


나도 이제 더 이상 애써 외면했던 몸의 이야기를 들어야겠습니다. 좀 더 건강한 노후를 위해서 말입니다.


점점 하는 일을 줄여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꼭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중에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을 선택해서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이제는 몸이 내게 하는 말을 듣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가 이 세상에서 죽음을 경험한 후 저세상에서 잠에서 깨어날 때 그게 그에게 보다 나은지 아니면 나쁜지 누가 알 수 있을까? 거기서 자신이 애타게 기대하던 것을 과연 얻었을까? 아니면 실망하고 말았을까? 우리 모두 곧 알게 될 것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주인과 하인) 266p 래프 톨스토이)     


주인과 하인

기상 상태가 좋지 않은 겨울, 주인 바실리는 자신이 소유한 숲을 거래하기 위해 하인 니키타를 데리고 무리하게 길을 나섭니다. 가는 도중 기상 상태는 더 악화되고 눈보라 치는 숲에서 몇 번이고 길을 잃고 찾기를 반복합니다.


길을 잃고 길을 찾는 과정에서 몇 번이고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숲을 거래하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서고 결국 낭떠러지 앞에서 길을 잃고 말들도 지치고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숲 속에 고립되고 맙니다.


그 상황에서 주인과 하인은 다른 죽음을 생각합니다. 발에서부터 감각이 없어지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하인 니키타, 죽음은 자신과는 무관하다 생각했을까요? 머릿속에는 상인으로서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셈을 계속하는 주인 바실리.


이대로 죽을 수 없는 바실리는 다시 길을 찾아 나서지만 결국 니키타가 있는 장소로 되돌아와 죽어가는 니키타에게 자신의 체온을 나눠주며, 니키타가 살아있으니 나도 살아있다 생각하며 죽음을 맞이합니다.


죽음을 받아들인 니키타는 주인의 희생으로 새로운 삶을 선물 받고 20년을 더 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죽음, 남의 이야기 같은..

언제까지나 건강할 것 같은 엄마가 쓰러지고 나서 ‘건강’이 보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나도 건강이 예전 같지 않으며, 마음은 28 청춘이나 몸은 자연스럽게 순리에 따라 나이를 먹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는 나에게 먼 이야기 같은 죽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부고 소식에 가까이 또는 멀리서 죽음을 바라보고 있지만 아직은 남의 이야기 같습니다.


죽음, 인간의 삶은 누구 하나 제외 없이 유한하지만, 죽음이 나의 문을 두드리기 전까지는 아무도 죽음을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경험하지 않은 죽음에 대해 말할 수는 없지만, 인생의 전환기 중년기에 있는 나는 요즘 몸 나이에 적응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건강하게 나이 들고 싶어요.

      

그리고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 나서 내 생각과 내 삶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 나에게 무척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죽음이 나에게 시간을 앗아 갈 수 있어도 나의 글을 뺏어가지는 못할 테니 말입니다. 죽음이 나의 문을 두드리기 전까지 기록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p.s 이 글을 쓰고 일주일 후 둘째 테레사가 코로나에 확진되었고, 갑자기 엄마는 많이 아픕니다. 그리고 도 코로나에 확진되었습니다.


아이들과 저는 코로나를 이겨냈고, 이제 격리 해제가 됩니다. 하지만 아직도 엄마는 그대로입니다. 엄마가 빨리 쾌차하셔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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