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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미상 Nov 25. 2019

잘 자




눈을 뜨면 그림 같은 곳

그리던 친구를 만날 거야


다시 풍선을 불어 날리면

천장보다 높은 곳에서 나릴 꽃잎 비


부서진 마음은 새것이 되고

아무도 미움을 사지 못할 거야


그러니 이제는 잘 자

악몽은 다 잊고 푹 자


눈을 뜨면 그림 같은 곳

이곳은 꿈처럼 깨어질 테니


이번엔 누구도 그 미소에

손 그림자 얼씬도 못할 거야








* 딱 한 번, 우연히 그녀를 만난 적이 있다. 낯선 카페의 단골이었던 그녀. 설리는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나와 동료들의 사진을 먼저 스스럼없이 찍어주겠노라 말을 걸어왔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서도 선명히 빛나던 검은 머릿결과 눈동자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미안하지만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은 어렵다며 미소로 거절하던 그 모습이 내겐 흐려지지 않는 사진처럼 남았다.


* 그녀의 친구가 잘 자라는 마지막 인사를 인스타그램에 남기고 그녀를 따라 떠났다. 두 친구가 풍선을 불며 밤새 생일파티를 하던 모습을 라이브 방송으로 본 적이 있다. 설리와 하라, 이름마저 후 불면 하늘거리며 꺄르르 흔들릴 것 같이 고운 그녀들. 세상의 온도를 올리는 웃음을 가졌던 그 천진난만한 소녀들을 이토록 일찍 잃어야 했던 까닭은 대체 어디서 물어야 할까.


* 그렇게 아팠으면 가시 돋친 원망의 말이라도 한 번 후련하게 던지고 가지, 끝내 그녀는 자신을 아프게 한 세상에 단 꿈을 당부하며 목 끝까지 이불을 덮어주고 돌아섰다. 남은 세상에서 꿈엔들 그들을 잊을 수 있을까. 우리 모두 그녀에게 딱히 잘못한 것은 없으나, 용서를 구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되어 그녀 없는 악몽을 살아가야만 한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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