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주 토요일
조카가 10월 태국 여행을 다녀오고 갖는 모임이다. 여행으로 정한 책을 다 읽지 못했다며 최근 회사생활에서의 변화와 태국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생각나 전했던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최근 상영되고 있는 드라마 중 '나의 해리에게'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있다. '해리'라는 이름의 인격을 가진 해리성 장애를 가진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우스운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모든 이들이 자신만의 '해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 이외의 또 다른 인격이 내 안에 존재한다는 거다.
나에게 '나의 해리'는 '나의 뇌'다. 나는 나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지 못한다. 나의 경험들이 어디에 어떻게 기억의 형태로 저장되는지 알지 못한다. 단지 내가 현실에서 직면하는 난해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나의 의지(의식)와 상관없이 잘 찾아준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알 뿐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나의 뇌를 믿는다. 수많은 경험들을 통해 자연히 갖게 된 믿음이다. 내가 해결하지 못해 힘들어할 때면 매번 당시 나에게 가장 적절하다 생각되는 해결책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현실에서 마주치는 문제들에 대한 고민은 그 문제가 만들어진 환경에서 벗어나야만 그 문제의 해결책이 떠오른다. 하지만 많은 경우 나의 의지(의식)에 따라 해결책이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그 환경에서 벗어나 문제의 무게에서 벗어나서야 '나의 뇌'는 내가 모르는 과정을 통해 나에게 최선일 수 있는 해력책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처음 이런 경험은 놀라움과 기쁨이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늘어날수록 나의 의지(의식)와는 다른 내 안의 무언가를 믿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 무언가를 '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을 다른 이들이 '직관'이라고도 또는 '육감', '영감'이라고도 부르는 것들이 아닌지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껏 읽었던 여러 책들 특히 뇌과학에 관한 책들을 통해 그 무언가가 '뇌'라 생각하며 나름 '나의 뇌'의 작동 방식을 추측하게 되었고 삶 속에서 문제를 만나 내 의지(의식)로 해결책을 찾지 못할 경우 몇 가지 행동 단계를 만들었다.
먼저 현실 문제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둘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예를 들어 책을 읽는다거나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본다거나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다거나 산책을 하거나 여행을 하거나 하며 문제가 일어났던 환경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뇌'를 믿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느닷없이 무언가가 떠오르고 그 떠오른 무언가를 가지고 다시 문제가 일어났던 환경으로 돌아와 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해 본다. 물론 떠오른 그 무언가로 한 번에 문제가 해결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금씩 변화를 주며 문제에 맞게 조정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해결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경험들이 늘어나고 그 해결책을 보며 내가 어딘가에서 경험했던 것들이 약간은 다른 형태로 내게 제시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강화된 습관이 있다. '나의 뇌'에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 또는 정보를 주는 것이다. 마치 나무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 듯 새로운 경험(정보)을 주는 것이다. 그 정보를 분류하고 저장하는 것은 나의 의지(의식)와는 무관하게 이루어진다. 그 방법은 나의 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경험은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으로 나눈다. 내게 대표적인 직접 경험은 여행이다. 경험을 늘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많다는 것이 한계이다. 직접 경험의 좋은 대안이 간접 경험이다. 내게는 책 읽기가 그것이고, '나의 뇌'에 공간과 시간에 제약 없이 많은 경험을 줄 수 있는 가장 저렴한 방법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어쩜 인간이 인간다운 행위 중에 가장 근접한 행위가 '사고실험'이 아닌가 생각하기에 끊임없이 책을 읽으며 '나의 뇌'에 먹을 것을 넣어 준다. 그렇게 나는 '나의 뇌'를 더 의지할 수 있게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