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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non Oct 19. 2021

미션: 솔로 16마디를 채워라

솔로 만들기는 왜 재미가 없었을까

24마디씩 3번의 솔로를 만들기. 이 때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보다는 마디를 채우는 데 급급했다.


‘재즈는 왜 이렇게 재미가 없나’라는 고난의 시간도 겪었다. 연습이 하기 싫어서, 너무 어려워서 같은 이유가 아니라 정말이지 재미가 없었다. 첫 번째 시련은 2010년 말 찾아왔다. 영어로 예를 들자면 이제 막 ‘I am a student’ 같은 문장을 만들 수 있게 되었을 즈음이다.

기초부터 탄탄하게, 정석대로 진도를 나가다 보면 초보자가 만나게 되는 기본 중의 기본. 블루스를 만났다. 블루스는 흑인 음악과 백인 음악이 만나 탄생한 장르다. 원래는 부르고 받는 형식의 노동요였다고 한다. 12마디를 기본으로 하는데, 블루스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블루스 스케일이다. 펜타토닉(도-레-미-솔-라 5 음계)을 기본으로 3음을 반음 내린 ‘블루노트’를 넣으면 블루스 스케일이 된다. C메이저 스케일은 ‘도-레-미b-미-솔-라-도’라고 재즈를 재즈답게 만든다는 이 음계를 머리로는 열심히 외웠다.


‘I am a student’를 만들 수 있게 된 초보자는 이제 다른 문장을 만들어 오라는 숙제를 받아 든다. 이름하여 ‘블루스 솔로 만들기’다.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F 블루스 12마디 코드 ‘F7 Bb7 F7 F7/ Bb7 Bb7 F7 F7/ C7 Bb7 F7 C7’를 오선지 위에 적어두고 멀뚱히 바라본다. 오선지를 어떻게 채워야 하나. 나는 블루스가 너무나 생소해 내가 블루스를 좋아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재미가 없을 리가 없으니까.

몇 년 뒤 다시 레슨을 받기 시작했을 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선생님 저.. 블루스 솔로 만들기 말고 다른 거 하면 안 될까요?’ 취미생의 특권(?)으로 재미없는 건 건너뛰어 봤는데, 또 다른 재미없는 것이 찾아왔다. 이번엔 보사노바 솔로 만들기였다. 나는 보사노바는 좋아하는데, 대체 왜 이번에도 재미가 없는 걸까. 고민하던 나는 홀로 답을 찾아냈다. 블루스나 보사노바의 문제가 아니라 솔로 연주가 걸림돌이구나! 그렇다면 솔로 연주 안 만들면 되지! 다른 사람들이 연주한 것을 카피하자! 실은 나를 가둔 거였다. 나는 솔로 연주를 재미없어하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최근에야 알게 됐다. 솔로 만들기가 왜 그렇게 재미없었는지를. 그동안 내게 솔로 만들기란 정해진 마디(8~32마디)를 도대체 언제, 어떻게 다 채울지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코드에 맞게 어프로치 노트(목표음 앞을 꾸며주는 음)를 사용하고, 같은 리듬을 반복하되 음계를 다르게 해 보기, 같은 음계를 쓰되 리듬을 다르게 해 보기 등등 이런저런 알고 있는 ‘법칙’을 써먹었다. 처음엔 화려하지 않게 시작했다가 뒤로 갈수록 풍성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흐름에 충실하게, ‘이쯤에서 속주가 한 번 들어가 줘야지’라고 생각하며 16마디를 채웠다.

2021년엔 좀 다를까. 어김없이 찾아온 솔로 만들기의 시간. 그런데 이번에 만난 7번째 레슨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하나의 콘셉트,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정하고 발전을 시켜보세요.” 그동안 솔로를 만들며 생각해보지 않았던 거였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 16마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고민해보지 않은 채, 마디를 채우려고만 했으니 재미가 있을 수가 없었다. 음악은 공식이나 법칙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데서 시작하는 거라는 당연한 명제를 여태 잊고 있었다.

그랬더니 그렇게나 채우기 어려웠던 16마디의 솔로 만들기가 재미있어졌다. 내 얘기를 들은 레슨 선생님은 말했다. “그래서 연주자들이 오픈 솔로(마디 수를 미리 정해두지 않고 진행하는 솔로 연주)를 하면 길어질 수밖에 없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자꾸 많아지거든요.


기사로 밥벌이를 한 지 8년 차가 되며 오히려 ‘글 쓰는 법을 까먹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기사는 온전한 나의 목소리를 내는 글이 아니다. 팩트를 엮는 글이다. 물론 기사에도 기자의 관점이 반영되며 개인의 문체가 드러나기도 하지만 온전한 ‘나’의 글은 아니다. 기사에도 법칙이 있다. 사례로 시작해, 기사 내용을 압축하는 리드 문단을 쓴다. 이후 본론으로 들어가고, 사실과 근거를 쓴다. 통계 자료를 넣고, 전문가의 멘트를 넣는다. 이렇게 기사의 법칙에 따라 충실한 기사를 쓰는 법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릴 적 애용하던 ‘싸이월드 다이어리’의 시대가 저물고 나서는 내 이야기를 글로 쓰는 법이 좀체 없었다. 점점 글 쓰는 법을 잊어버리게 된 이유다. 어쩌면 내 삶도 정해진 마디를 채우기 위해 살아내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실은 클래식 음악을 배울 때도 이 음악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악보에 그려진 음을 제대로 읽고 손가락이 제대로 굴러가도록 연습하느라 바빴다. 여기에서는 여리게 저기에서는 강하게 연주하라는 지시를 따르느라 정신없었다. 그래서였는지 음악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라는 당연한 말에 더욱 망치로 머리를 내려 맞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렇게 재즈 피아노를 배우면서, 그리고 글을 쓰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뭘까. 오늘은 그 고민부터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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