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
인터넷에서 재즈에 관해 쓴 블로그 글을 보면 주눅이 들곤 했다. 음악은 전문가의 영역으로 규정된다. 클래식 음악 담당 기자를 할 때에도 클래식 음악 연주자나 평론가들의 듣는 귀와 표현력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음을 이미 체감했었다. 재즈 피아노의 경우는 더 그렇다. 재즈의 역사와 이름난 연주자들의 특색, 기념비적인 음반 등을 나는 클래식 보다도 더 알지 못한다. 그런데… 재즈 피아노를 배우는 과정에 대한 글을 써도 되는 걸까. 비웃음만 사게 되는 건 아닐까, 사서 걱정을 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쓰는 게 뭐가 어때서!’라는 생각이 든 건 의외의 풍경 때문이었다. 요새 세상 사람들은 나 빼고 모두 골프에 빠져 있다. 골프 레슨을 받고, 스크린 골프장에서 연습을 하고, 필드에 나가는 모습을 모두 SNS에 공유한다. 자신의 자세가 올바르지 못하다며, 공이 멀리 나가지 않는다며 더 연마해야겠다고 한다. 이렇게 골프를 취미로 삼은 사람들을 보며 프로 골퍼들이 비웃을까? 아닐 거다. 골프를 배우는 사람들이 골프의 역사나 이름난 선수의 동작을 외우고 있는 것도 아닐 거다. 재즈 피아노 레슨을 받고, 연습을 하고, 합주실에서 친구들과 어설프지만 합주를 이어 가는 내 취미도 마찬가지 아닌가! 비웃음을 사게 될까 걱정부터 앞서지 않기, 내가 생각하는 재즈 같은 삶은 이런 것이다.
나는 전문 연주자로 먹고살 만큼의 재능이 없음을 일찍이 깨달은 덕에 ‘음악은 취미로 하는 게 행복하다’는 어른들의 말에 따르기로 했고, 학업 전념을 이후로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었다..... 가 1년 만에 다시 레슨을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퓨전 재즈 동아리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밴드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밴드라고는 록 밴드 밖에 몰랐던 시절이다. 안타깝게도 록 밴드는 아무래도 일렉 기타가 메인 사운드를 맡는다고 생각해 고민하던 찰나, 내 눈앞에 피아노를 칠 수 있는 밴드가 나타났다. 재즈를 접하게 된 계기도 재즈 피아노 레슨을 받게 된 계기도 모두 이 동아리였다.
나로선 클래식 피아노에서 재즈 피아노로의 취미 전향(?)이었다. 처음엔 곡이 다르고 이론이 다르고 연주 방법이 다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다르게 연주하기 위해선 사고하는 방법과 습관까지도 변화가 필요했다. 손가락은 클래식과 다른 리듬에 익숙해져야 했고, 자꾸만 음표를 찾아 악보로 향하는 눈도 멈추어야 했다. 클래식처럼 생각하는 사람에서 재즈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재즈를 잘 연주할 수 있는 거였다.
재즈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습은 재즈를 더 닮았다. 나는 악보에 쓰인 음표를 읽고, 건반으로 그대로 옮기도록 배웠고 그게 더 편한 사람으로 자라났다. 하지만 기존에 정해진 룰에 그대로 따르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취미에 투영하고 있다. 이미 성공한 사람들이 밟은 길 외에 다른 길이 존재한다는 걸 깨닫지 못한 삶, 타인이 정해준 답에서 어긋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삶, 해야 하는 것이 아닌 하고 싶은 것을 더 진작에 고민해보지 못한 삶... 20대에 이어 30대에도 이런 후회를 반복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 나는, 그래서 재즈처럼 살고 싶다.
재즈 피아노를 배우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화음이 더없이 깊고 아름답게 들릴 때가 있다. 이게 어울린다고? 싶어 놀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화음은 이미 알고 있을 때도 있지만 다양하게 눌러보다 우연히 발견하게 될 때도 있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도, 레슨을 받을 때 내가 머릿속에 정해두었던 음에서 빗나간 다른 음을 누를까 봐, 걱정한다. '틀릴까 봐' 걱정한다. 이런 글을 써도 될까, 비웃음을 사진 않을까, 그럴 깜냥이 될까, 과연 정답일까…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조차. 이렇게나 걱정하는 사람이기에 재즈를 동경하게 된다.
클래식에는 클래식으로 분류되는 ‘원전’이 있다. 클래식 연주자들은 이를 지키며 자신의 해석으로 연주한다. 클래식 연주자들이 리사이틀을 준비하며 가장 많이 했던 이야기는 “작곡가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밀이었다. 예컨대 베토벤의 곡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200년 전 베토벤이 자필로 그린 악보는 물론 지인에게 보냈던 편지까지 읽어보며 그의 상황을 이해하려 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재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야 할 원전이 존재하지 않는다. 재즈 연주자들이 레퍼토리로 사용하는 스탠더드 곡들을 모은 ‘리얼북’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한다. 1970년대 당시 버클리 음대 학생들이 학교에서 많이 연주되던 곡들의 리드 시트(lead sheet)를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 리드 시트들은 멜로디와 코드만 적힌 달랑 한 페이지 악보가 전부다. 재즈 연주자들은 이 멜로디와 코드를 계속해서 변형하며 다른 사람이 생각해내지 못한 멜로디와 화음, 리듬으로 연주한다. 취미인의 눈에 이 사람들은 연주와 동시에 작곡을 하고 있다.
한 유튜브 영상에서 이런 댓글을 봤다. "클래식: 내 말대로 해, 재즈: 네 맘대로 해." 누군가의 말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자마자, 내 맘대로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는다. 내 선택의 책임은 온전히 나의 것이기에 두렵고, 그래서 가끔은 누군가 정해준 답을 그대로 따라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돌아서고 싶다. (물론 정답 따라 사는 것도 어렵다.)
그럴 때마다 내가 동경하는 쪽은 ‘재즈스러운 사람’이라는 점을 떠올린다. 건반을 한 음, 한 음 눌러보며 더 잘 어울리는 화음을 찾아내고, 애초에 주어진 코드를 멜로디에 어울리면서도 새로운 것으로 바꿔보고, 낯선 리듬을 적용해 보면서 내 삶도 이렇게 흘러가길 바라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손가락은 익숙한 코드 톤(화음의 구성음. C화음이라면 바로 연상되는 도미솔)을 향해가려 하지만, 다른 음을 눌러가며 느끼는 희열이 삶에서도 느껴지길 바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