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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non Oct 20. 2021

바로 그거예요, 제가 하고 싶었던 게

리하모니제이션(Reharmonization) 

 Kazumi Tateishi Trio의 Ghibli Meets Jazz (2010.9), European Jazz Trio의 Vienna Forest (2010.7) 앨범 커버. 


누군가는 원전의 훼손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베토벤의 소나타를, 쇼팽의 녹턴을 재즈 버전으로 연주한 음악도 좋아한다. 한 편으로는 너무나 신기했다. European Jazz Trio가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 3악장 재즈 버전이나, Kazumi Tateishi Trio가 '천공의 성 라퓨타' OST인 '君をのせて (너를 태우고)'를 연주한 버전은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원곡도 아름답지만 재즈 버전은 사람을 홀리는 매력이 있다.

“아 제가 하고 싶은 게 바로 그거였나 봐요!” 내가 재즈의 어떤 부분을 좋아하는지 굳이 생각해보게 된 건 ‘취미 사춘기’ 시기를 겪을 때였다. 레벨로 치면 기초반만 5번을 들은 후 여섯 번째 레슨 선생님에 이르러서였다. 재즈 피아노에서 사용하는 기본 언어와 문법을 배우고, 정석대로 스케일과 솔로잉을 배우다가 '재미없음'의 늪에 빠져버린 차였다. 기본기부터 다지는 것은 가장 중요한 거지만 지루한 시간들을 견뎌야 한다. 뭔가 멋진 것을 하기 위해선 이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마음과 내가 하고 싶은 것부터 배우고 싶은데 그게 뭘까 모르겠어서 심란한 마음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어떤 곡을 재즈 버전으로 편곡한 곡을 좋아했다. 흔히 알고 있는 곡을 그렇게 바꿔보는 연주를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 들었다. 리하모니제이션(reharmonization)이라는 단어를 말이다.


리하모니제이션의 정의를 찾아보면 ‘멜로디에 코드를 붙여 수정하는 것으로, 사운드에 색채적인 변화를 주기 위한 코드 진행의 세분화로 연결 짓는 경우가 많다’고 나온다. 코드를 바꿔서 곡을 재해석하고 분위기를 바꾼다는 의미다. 고등학교 동아리 시절에는 트로트인 장윤정의 ‘어머나’를 재즈로 바꿔 부른 베이지라는 가수의 버전을 공연한 적이 있는데 이 버전은 경쾌하고 발랄한 트로트와 전혀 다르게 끈적하고 어두웠다. 돌이켜보니 리하모니제이션을 거친 거였다!

밝은 느낌을 가진 단순한 코드 진행의 동요도 리하모니제이션을 거치면 더욱 풍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곡의 색채를 바꾸려면 코드부터 변형해야 한다. 리하모니제이션을 하기 위한 방법으로 처음 배운 건 대리 코드(Substitution)였다. 텐션 노트가 한 코드에 ‘긴장’을 부여하는 음이라면, 대리 코드는 코드가 진행되는 과정에 긴장을 준다. 한 코드와 구성음이 비슷한 다른 코드로 바꾸는 것이다. C key에서 1도 화음은 도-미-솔로 구성된다. C메이저 코드를 대리할 수 있는 건 구성음이 겹치는 A마이너(라-도-미), E마이너(미-솔-시)가 된다. F 코드(파-라-도)는 D마이너(레-파-라)로 대신할 수 있다.

작은 별을 연주할 때 A마이너 코드를 짚고 첫 음을 시작하면 같은 멜로디라도 완전히 다르게 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메이저 코드의 대리 코드는 모두 마이너다. 어릴 때부터 장조보다는 단조의 곡을 좋아했던 나는 이렇게 코드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곡이 ‘마이너’하게 들리게 된 데에 괜스레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 가지 문제라면 모든 밝은 곡을 자꾸만 우울하게 만들어 버린다는 걸까.

트라이톤 대리 코드(Tritone substitution)도 흥미롭다. 어떤 음의 도미넌트7 코드는 그 화음의 3, 7음을 공유하는 관계에 있는 도미넌트7 코드로 대체할 수 있다. G7 코드는 솔-시-레-파로 이뤄지고, 3,7음은 시와 파가 된다. 시와 파를 7,3음으로 갖는 건 증4도 관계에 있는 Db7이다. 같은 멜로디에 이렇게 화음을 바꿀 수 있다. 하나의 코드를 다양하게 변형하고 쪼개면서 리하모니제이션이 된다. 이미 알고 있는 곡이 이렇게 재즈처럼 들리게 되는 순간, 홀린다고 느껴지는 것 같다.


‘변주’와의 차이점은 뭘까. ‘작은 별’을 모차르트는 일찍이 ‘반짝반짝 작은 별’ 변주곡(K.265)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모차르트의 변주는 코드는 그대로 둔 채 그 안의 리듬과 멜로디를 변형시킨 게 많다. 예컨대 한 박자에 한 음씩 들어가는 원곡에서 첫 번째 변주에서는 한 박자에 16분 음표 4개가 들어가는 버전으로의 변주 말이다. 두 번째 변주는 첫 번째와 유사한데 왼손으로 16분 음표를 연주한다. 그러다 보니 곡의 분위기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다. 그런데 리하모니제이션은 곡의 색채를 완전히 달라지게 만든다.

조바꿈과도 다르다. 처음엔 편곡된 버전이 코드 진행의 조성만 바꾸면 되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리 코드를 바뀐 조성에 맞게 수정해도 재지한 색채의 사운드가 나오지 않았다. 작은 별 변주곡에서도 총 12개의 변주 중에 8번째 변주에서는 조성이 내림 마단조로 바뀌어 밝은 기운이 어둡게 달라지지만 그 사운드가 재즈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작은 별이 리하모니제이션을 거치면, 이렇게 다양한 코드가 나온다.


어떤 것이든 내 스타일로 소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재즈의 또 다른 매력이라면, 중요한 건 하나만 바꿔서는 안 된다는 거다. 다 바꿔야 한다.  나의 레슨 선생님은 C - C - F - C로 이어지는 작은 별의 ‘도도솔솔 라라솔’ 부분의 코드를 Gm7 - C7sus4 - F#halfdim7 - B7 - Em7 - A7이라는 굉장히 복잡한 코드로 리하모니제이션 해주었다. 10년 정도 내공을 쌓으면 나도 언젠가 이런  리하모니제이션을 할 수 있으려나. 리하모니제이션을 배우면서 알게 된 건 코드의 변형은 궁리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다양해진다는 거다. 최근엔 유튜브에서 리하모니제이션을 집중적으로 알려주는 교수님도 발견했는데, 이런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 있다니 정말 좋은 세상이다. 오늘의 교훈은 이거다. 그러니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그리고 무엇보다 필요한 건 피아노 의자에 엉덩이를 오래도록 붙이고 있을 인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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