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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non Oct 23. 2021

제 DNA엔 그루브가 없나 봐요

박자를 어떻게 세라는 말씀이신가요

스윙 리듬을 나타낸 표기. 악보에 나오는 모든 8분 음표의 리듬은 2:1이 된다.


재즈의 매력에 빠졌던 순간을 떠올려 보면 대부분 화음 때문이었다. 낯설지만 아름다운 색채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미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곡을 생각지 못했던 색채로 다시 그려낼 수 있다는 점이 재즈를 배우고 싶다는 동기가 됐다. 그런데 재즈를 재즈로 만드는 것은 화음뿐만이 아니었다. '아, 이 곡은 재즈구나' 혹은 '재즈풍이구나'라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건 리듬일 때가 많다. 재즈가 가진 그루브를 바로 느낄 수 있는 지점은 리듬이기 때문이다.

처음 재즈를 배울 때 기존의 사고와 습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느낀 것도 리듬과 박자 때문이었다. 박자를 세는 법부터 다시 배웠다. 내가 알고 있던 4분의 4박자는 강-약-중간-약! 1,3박자에 강세를 준다. 이렇게 박자를 세 온 지 십 년이 넘었으니 박자란 응당 그렇게 세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재즈는 그게 아니란다. 2,4박에 강세를 주어 약-강-약-중간으로 음악을 느껴야 한다. 이름하여 '업비트'다. "박자를 도대체 반대로 어떻게 세요?" 분명히 시작하기 전엔 원 투(!) 쓰리 포(!)라고 박을 세는데, 발로는 어느새 원(!) 투 쓰리(!) 포가 되어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내가 박자를 반대로 잘 세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펑키하게 연주하라는 곡에도 등장하는 싱코페이션과 악센트.

스윙 리듬은 악보의 8분 음표 2개를 1:1이 아닌 2:1의 길이로 연주하라고 한다. 그리고 악센트는 뒤쪽 음에 줘야 한다. 보통은 긴 음이 센박이 되고 짧은 음이 여린박이 되기 마련인데, 그걸 반대로 하라는 것이다. 스윙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싱코페이션(당김음)으로 연주하라는 지시 표를 여러 군데에서 본다.

'뒷음'에 강세를 주어야 그루브가 살 수 있다는 걸 몸소 느낀 건 약 10년 전이었다. 유튜브에서 발견한 이탈리아 재즈 피아니스트 지오반니 미라바시(Giovanni Mirabassi)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 재즈 버전 연주를 듣고 서다. 이 곡을 연주해보고 싶었던 나는 인터넷에서 악보를 구했다. 그리고 치던 대로 악보를 쭉 읽어나가는데... 왜 느낌이 다른 걸까? 재즈에서 중요한 건 리듬과 그루브라는 걸 알게 된 순간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마음의 여유'라는 것도 함께 배웠다. 신기하게도 속도감이 있는 곡이라도 내가 연주하면 조급함이 드러나는 반면 연주자들의 연주를 들어보면 한없이 여유가 느껴진다.

https://youtu.be/h0t8Qs8fuw8


'바로 그거예요, 제가 하고 싶었던 게'라는 말을 리하모니제이션 이후로 한 번 더 쓰게 된 적이 있다. 스윙과 보사노바 리듬을 배우고 난 뒤에 접하게 된 펑크(Funk)다. 펑크는 흑인들의 소울, R&B 음악과 재즈가 섞여 탄생한 장르라고 한다. 아름답다는 표현에 앞서 '와, 진짜 멋지다'라는 감탄사를 먼저 자아내게 했던 곡들이 내게는 펑크였다. "펑크를 배우고 싶다"라고 말하고 난 뒤 받아 든 건 펑크 리프 연습용 악보였다. 펑크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박자를 엇박이 아닌 정박으로 세도 된다는 거다. 대신 펑크는 1박을 16분 음표 4개로 쪼개서 생각해야 리듬감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슬프게도 펑크 리프를 열심히 연습해 악보를 틀리지 않게 연주하는 것과 이를 응용해서 내 스타일의 즉흥연주를 한다는 것 사이에는 또 안드로메다 급의 거리가 있었다.


같은 곡이라도 다른 리듬으로 편곡된 곡들을 들어보는 취미가 생겼다. 내가 좋아하던 곡이 펑크였구나, 내가 보사노바도 좋아하는구나, 음악 취향을 알아갈수록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알게 되는 것 같다. 아버지의 원곡을 따라 딸인 Natalie Cole이 부른 'LOVE'는 스윙이 베이스다. 싱가포르의 Olivia Ong의 싱그러운 목소리가 돋보이는 버전은 보사노바다. 그리고 베이스의 찰진 리듬이 멋진 Joss Stone의 LOVE가 바로 펑크 리듬이다.

여러 장르의 버전을 돌려가며 듣는 곡으로는 Just the two of us도 있다. '퓨전 재즈'로 분류되는 원곡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다른 버전도 있다. 브라질의 기타리스트 Diego Figueiredo와 보컬 Cyrille Aimee가 부른 남미의 보사노바 버전과 유튜브 항해 중에 발견한 'Renee Howard Trio'의 버전도 좋아한다. 미국의 지역에서 활동하는 피아니스트 겸 보컬로 보이는 '덜 유명한' 이 트리오는 피아노, 베이스, 드럼만으로도 Just the two of us가 어떻게 새로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니까.  

https://youtu.be/WrT4K3hcWe0


각각의 그루브를 살리려면 보사노바는 '흘러가는 듯이' 연주를 해야 하고, 펑크는 '찰진 리듬'을 잘 살려줘야 한다. 이렇게 이론으로는 잘 배웠는데, 배우면 배울수록 나의 하소연이 늘어난다. '제 DNA엔 그루브가 없는 것 같은데 어쩌면 좋을까요.'

우리 조상님들은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 하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며 말리셨지만, 나는 열심히 듣고 연습하면 흉내라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Renee Howard의 영상을 좋아하는 건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게 백발의 할머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의 랜선 롤모델.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품고, 오늘도 뱁새는 DNA에 없는 펑크 그루브를 인공 주입하기 위해 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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