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하게 적용해보라'는 숙제
재즈 레슨 N년 차, 마침내 깨달았다. 재즈 선생님들은 물고기를 잡아주지 않는다는 걸. 다만 물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주려는 마음가짐으로 수강생을 대한다. 그리고 수강생, 나는 물고기 잡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미 잡힌 물고기를 손에 얻고 싶다는 생각에 휘어 잡히곤 한다.
이런 사고 흐름을 만드는 건 재즈에 악보가 없다는 사실이다. 10여 년 전 Jane Monheit의 Taking a chance on love의 피아노를 맡아 공연을 했었다. 무려 홍대입구 앞의 재즈바를 빌려 관객들을 모시고 하는 첫 공연이었다. 이제 막 재즈에 입문한 나는 재즈에서 중요한 게 뭔지도 잘 모른 채, ‘클래식 음악보다 누르는 음이 적으니 어렵지 않을 거야’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인터넷의 바다를 아무리 뒤져보아도 악보를 찾을 수 없었다. 일단 악보가 있어야 흉내를 내든지 말든지 할 게 아닌가. 그때 알았다. 재즈의 연주는 악보가 없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맨땅의 헤딩이라는 걸.
그때 레슨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슥슥 코드를 받아 적어내려 갔다. 듣자마자 DbM7임을 알아차리는 게 신기했던 난 지금도 그 첫 코드를 잊지 못한다. (첫 코드만 잊지 못한다.) 문제는 코드만 적어주었다는 점이다. 내심 콩나물 악보를 다 그려줄 것이라 기대했던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물론 채보는 그렇게 무상 노동을 바라서도 안 되는 일이다. 선생님은 코드를 적어준 뒤 ‘이제부터는 네가 할 수 있지?’라는 흐뭇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때부터는 나의 청음 노동이 시작됐다. 청음을 열심히 하면 주로 멜로디가 되는 탑노트는 받아 적을 수 있지만, 지금도 코드 그 자체를 바로 알아들을 수 없는 나는 코드 청음을 하는 전공자들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재즈 선생님들은 악보를 그려주지 않는 것은 물론 악보를 가져가도 악보대로 치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Jamiroquai의 Virtual Insanity라는 곡의 합주를 준비하며 도대체 이런 펑키한 느낌은 어떻게 살려야 하는지를 배우고 싶어 악보를 들고 레슨을 받으러 갔다. 그러자 선생님은 펑크에 다양하게 적용해 볼 수 있는 펑크 리듬을 가르쳐 준다. 음표가 아닌 코드를 보고 연주해야 한다고 일러준다. 이 곡에서 꼭 살려야 하는 포인트는 따라가되 보이싱도 악보대로 하지 말고 더 좋은 소리를 찾아보라는 숙제를 내준다.
하지만 숙제를 받아 드는 순간 드는 생각은 이렇다. '선생님은 왜 물고기를 잡아주지 않고 잡는 법만 알려주는 걸까.' 내가 지난주에 받아 든 숙제도 이랬다. Re-cordame라는 곡을 두고, ‘컴핑과 멜로디를 적절하게 섞어보기’ ‘코드와 리듬 변형 다양하게 시도해보기’ ‘컴핑 리듬 사이사이에 베이스 리듬을 고스트 노트(박자가 남는 부분에 들릴 듯 말듯한 음을 끼워 넣어 연주. 빈 곳을 채워 곡이 더 풍성하게 들린다)처럼 끼워 넣어보기.’ 요약하자면 다양한 시도를, 적절하게, ‘알아서’ 해보라는 것이다. 그냥 멋진 악보를 선생님이 그려준 대로 보고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게 되는 숙제다.
그래서 재즈를 배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기 주도 학습의 중요성도 깨닫게 된다. 어린 시절 피아노 학원에서는 10번 연습해 오기라는 숙제를 받아 들고 포도알에 색칠을 했었지만, 지금 배우는 재즈에선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이 곡을 몇 번 연습해 오는 건 중요하지 않다. 내 나름대로의 곡을 만들어오는 게 핵심이다. 어떻게 응용해서 연습하냐에 따라서 내가 발전할 수 있는 크기가 무궁무진하다. 같은 코드라도 보이싱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를 이렇게 저렇게 시도해 보거나, 펑크 리듬을 배울 때도 펑크 리프를 12키로 바꿔가면서 연습해 보는 건 내 자율에 달렸다. '이 곡을 연주해보고 싶어서 따라 해 보는 것'을 넘어서 보라는 깊은 뜻의 숙제인 셈이다.
물론 이런 숙제는 어렵다. '내가 대체 왜 악보도 없는 걸 배우겠다고 해서'라는 후회가 막심할 때도 적지 않다. 그럴 때마다 레슨 선생님의 조언이 떠오른다. "재즈에서 제일 중요한 건 악보대로 치지 않는 거예요." 재즈의 정신이라면 이런 것이겠지. 물고기는 내가 스스로 잡아야 하는 것이다. 어른이 되면 나에게 숙제를 내주는 사람이 없어지는 것 같지만 실은 나 스스로 숙제를 내줘야 한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건 무엇이며, 이 순간 내가 더 연마해야 하는 건 무엇인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