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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non Oct 24. 2021

잘 듣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인다는 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는다. 그리고 잘 공감한다. 나의 장점을 표현해야 할 때, 나는 이렇게 설명하곤 했다. 기자가 되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생각해보게 된 장점이었다. 기자가 할 첫 번째 일은 ‘듣기’라고 생각했다. 일단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은 뒤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는 것, 나는 언론의 기능 중 하나인 사회의 갈등 조정 기능을 이렇게 해석했다. 그래서 조화의 가치를 참 많이 강조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직무와는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합주 경험을 자기소개서에 써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합을 맞춰 곡을 연주한다는 게 일을 할 때도 비슷하게 작용한다고 생각했다. 불협 화음을 이루지 않고 합을 맞추기 위해서는 정말로 다른 사람의 연주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합주를 꾸준히 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배운 음악은 혼자 연주하는 곡이었다. 혼자 연주하는 것과 다른 악기와 함께 하는 게 완전히 다르다는 건 연습할 때도 알 수 있다. 재즈 곡을 연습할 때는 드럼 비트와 베이스 음이 녹음돼 있는 ireal이라는 앱을 사용한다. 그런데 메트로놈으로 박자만 맞출 때보다 훨씬 어렵다. 드럼은 드럼대로 베이스는 베이스대로 연주하고 있는 와중에 나도 그에 맞춰 연주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보컬을 위한 반주를 할 때도 피아노 혼자 하는 게 수월하다.  피아노 혼자 반주를 하면 왼손으로 베이스 음을 누르고, 오른손으로는 컴핑을 하면 된다. 그런데 합주를 할 때도 베이스도 있다. 두 악기가 굳이 같은 음을 내도 되지 않으므로 내 역할은 다시 왼손, 오른손 양손 컴핑으로 바뀐다. 나는 피아노가 멜로디와 베이스를 모두 연주하는 곡에 익숙해져 있기에, 곡에 따라 다른 역할을 맡는다는 것이 쉬울 리가 없었다. 그런데 합주는 그렇게 이뤄져야 하는 거였다. 상대에 따라 내가 달라질 수도 있어야 하는 거였다.


재즈를 들어보면 합주는 단순히 서로 ‘맞춘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음악을 주고받는다. 악기 별로 솔로 연주를 하다가  언제 다시 다시 원래 곡의 멜로디로 돌아갈 것인지 연주자끼리 눈빛으로 합을 맞춘다. 작곡가가 정해둔 틀 안에 갇히지도, 지휘자의 리드에 따르지 않고, 그저 연주자 간의 소통으로 음악을 ‘만들어 간다.’

그리고 최근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생각하게 됐다. 레슨 선생님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과 함께 할 때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는 당연한 말이었다. 연주를 할 때 시작은 다소 ‘심심하게’, 뒤로 갈수록 변주를 더해 더 풍성한 연주가 되도록 다이내믹에 변화를 주는 건 중요하지만, 그게 보컬을 가릴 정도로 커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노래를 부른다고 가정하고 반주를 만들어보라는 말은 나를 너무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다.

보컬이 없이 합주할 때도 마찬가지다. 솔로 연주를 하는 동안은 그 연주자가 제일 반짝이는 시간이다. 피아노에서 베이스로 그리고 드럼으로, 모두에게 주어진 그 시간 동안, 다른 악기들은 숨을 죽이고 박자를 깔아주는 정도의 연주만 한다. 합주를 하는 동안 나의 뒷받침이 누군가가 빛나는 순간을 더 반짝이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뜻이다.

돌이켜보면 합주를 하는 동안 ‘피아노 위주’의 생각을 벗어나지 못했던 거였다. 레슨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계속 피아노만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을까. 합주를 한다고 말했지만, 나에게 드럼이, 베이스가 맞춰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을까. 내가 기타 없는 밴드 합주를 추구하는 이유도 기타와 피아노의 역할을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사실 피아노 소리가 기타에 묻히는 곡을 연주하고 싶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물론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피아노가 주인공인 곡들이 많다. 클래식도 피아노 소나타를 제일 좋아하고 재즈도 마찬가지다. Trio Toykeat의 멤버였던 Iiro Rantala나, Hiromi, David Benoit, Brian Culbertson, Brad Mehldau 등 당연히 피아니스트들의 이름과 그들의 연주를 좋아한다. 보컬이 들어간 경우에도 피아노가 반주를 하는 곡을 좋아한다. Silje Nergaard의 Be Still my heart 같이 건반 소리가 잘 들릴수록 말이다.

하지만 이런 곡을 만드는 동안에도 연주자들이 얼마나 상대에게 귀를 기울이는지 이제는 안다. 상대의 연주를, 그리고 이야기를 ‘듣는다’의 의미에 대해선 나의 마음 자세를 고쳐 먹는 계기가 됐다. 기자는 ‘쓰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한자로 이뤄져 있지만 내게 기자는 우선 잘 듣는 사람이어야 한다. 일이 아닌 주변인들과의 관계에서는 물론 일방적으로 말하고 듣는 사이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들어주기를 바란다. 어느 쪽이든 일단 잘 들어야 하는 건 공통점이다. 정말로 잘 들을 자세가 돼 있느냐고, 재즈와 음악을 가까이 한 덕에 하나 더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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