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음악을 작곡하는 AI가 할 수 없는 것

작곡 AI와 에릭 사티가 던진 질문

by isnon

박사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갖췄다는 챗GPT5가 공개됐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대체할 것이란 새롭지 않은 예측이 반복된다. 기자가 사라지고, 개발자가 사라지고, 화가가 사라지고, 작곡가가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챗GPT는 문장을 쓰고, 그림을 생성하고, 코드도 만들어준다. 분위기와 장르를 입력하면 몇 분 만에 음악을 뚝딱 완성하는 AI들도 인기다. AI가 작곡한 음악으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업로드하면 저작권 문제도 피해갈 수 있다는 ‘새로운 수익 모델’ 글이 여기저기 보인다.

인간의 자리, 음악가의 자리는 어디까지 지켜질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플레이리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유튜브에 업로드돼 있는 수많은 음악 플레이리스트들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집중할 때 듣는 음악’을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있다.

사실 음악 자체가 집중력을 높인다는 명확한 과학적 연구 결과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음악을 듣기 위해 이어폰을 끼는 순간 외부 소음이 차단되고, 작은 개인 공간이 만들어진다. 또 익숙한 음악은 안정감도 줄 수 있다. 게다가 ‘이 음악을 들으면 집중이 더 잘 된다’는 믿음이 있다면 실제 몰입까지 이어질 것이다. 이 플레이리스트들이 말하는 공통점은 이것이다. “음악에 집중하지 마세요, 할 일에 집중하세요.”

이렇게 음악을 배경에 두려는 발상은 프랑스의 작곡가 에릭 사티(1866~1925)로부터 시작됐다. <짐노페디>, <Je te veux> 등으로 잘 알려진 작곡가다. 그는 연주되지만 감상의 대상이 아닌 음악을 제안했다. 존재하되 인식되지 않는 음악, 이른바 ‘가구 음악’ 개념은 ‘배경음악’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1917년 파격적인 선언이었다. 가구 음악은 마치 집안의 의자나 탁자처럼 음악도 배경에 머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의 <가구 음악> 초연 당시, 음악이 시작되고 청중들이 대화를 멈추자 사티는 “연주에 집중하지 말고 대화하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사티가 활동하던 19세기 말은 낭만주의가 가장 화려하게 꽃피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는 화려하고 복잡한 음악 대신 단순함을 택했다. <짐노페디>는 단순한 화음 위에 느린 선율이 춤추듯 반복되며, 절정도 없이 그저 흘러감으로 공간을 채운다. 사티는 더 나아가 음악과 일상을 연결하고자 했다. 발레 음악 <파라드>에서는 타자기, 사이렌, 병 뚜껑 같은 일상 소음을 실제 악기처럼 사용했다.

사티의 미니멀리즘과 실험적인 태도를 이어 받은 사람이 존 케이지다. 그의 대표작 <4분 33초>는 4분 33초 동안 아무 것도 연주하지 않고 침묵으로 시간을 채우는 작품이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주변의 모든 소리가 ‘음악’이 된다. 사티의 영향은 훗날 미니멀리즘 음악과 브라이언 이노의 ‘앰비언트’ 까지 이어진다. ‘집중하기 좋은 백색소음’ 같은 소리도 여기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https://youtu.be/vNwYtllyt3Q?si=PnoiaWzguSKpoBaU

앰비언트는 1960~70년대 신시사이저의 발달과 함께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장르다. 선율이나 리듬보다 톤, 질감, 분위기를 강조한다. 사티가 음악으로 재현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분위기와 질감이었다. 브라이언 이노의 <Music for Airports(1978)>는 공항이라는 불안한 공간에서도 사람들이 평온하게 머물 수 있게 설계된 음악이다. 음악 자체가 집중의 대상이 아니라 ‘배경이 됨’으로써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이다.

이제 다시 AI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반복과 질감, 패턴 변주에 강한 AI는 특히 이런 음악을 잘 모방한다. ‘집중력 높여주는 음악’은 AI가 가장 잘 만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순함과 주변의 소음이 예술로 거듭나는 순간은 소리의 배열만으론 완성되지 않는다. 그 음악이 가진 철학적 의미를 제시하고, 느끼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음악이 반드시 감상의 대상일 필요가 없다고 선언하거나, 주변의 소음마저 음악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하는 것—이런 질문은 인간만이 던졌다.

AI는 인간을 대신해 작곡하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어진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이런 분위기의 음악을 만들어줘”라는 명령에는 탁월하게 반응하지만, 스스로 “우리는 지금 어떤 음악을, 왜 필요로 하는가” 질문하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예술과 인간의 역사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믿는다. AI가 그 질문과 철학까지 인간을 앞서는 날이 올까? 새로 출시된 챗GPT5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2025년 9월 2일 카이스트신문에 실린 글을 다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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