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이 사라질 지구의 음악

AI가 변형한 2050년의 비발디 사계

by isnon

요즘 도시 전체가 한증막 같다. 기상 관측 117년 만에 가장 무더운 7월 상순이었다고 한다. 한국뿐 아니라 지구 전체가 폭염에 신음하고 있다. 파리의 명물 에펠탑도 7월 1일부터 정상 부분 입장이 금지됐다. 철골 구조물이 폭염으로 20㎝가량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기후 시스템이 되돌릴 수 없는 경로에 접어들었다는 경고가 잇따른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합의한 ‘1.5도 상승 제한’은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한 마지막 방파제였지만 지난해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52도 올랐다. 과학자들은 이 추세라면 남은 탄소 예산이 3년 안에 바닥날 것이라 경고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음악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꺼지지 않는 산불, 예상치 못한 홍수에 침수된 도시, 뒤엉킨 계절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위기를 숫자로 인식한다. 과학의 언어는 정확하지만, 체감되지 않으면 ‘실재한다’고 느끼기 쉽지 않다. 음악은 이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묻는다.

2021년 세계 환경의 날, 〈The [Uncertain] Four Seasons〉라는 프로젝트가 공개됐다. 18세기에 작곡된 안토니오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를 변형해 2050년의 계절을 예측한 음악으로 만든 것으로 과학과 음악이 협업한 작업이다. AI는 <사계> 원곡 악보를 기반으로 기온, 강수량, 폭염, 가뭄 빈도 등 각 도시의 미래 기후를 반영해 음악을 재구성했다. 서울, 시드니, 암스테르담, 베를린 등을 거쳐 2023년 9월, 대전의 미래 기후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사계 2050-대전〉으로 이어졌다.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솔리스트이자 예술감독으로 나섰고,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연구팀이 협업했다. IPCC의 고위험 시나리오에 대전의 위도와 경도를 입력해 2050년 기후 예측값을 추출한 결과 1년 중 161.5일 동안 여름이 지속되고 일 최고기온은 39.5℃에 이를 것으로 나타났다.

https://youtu.be/_xA52lnp2X8?feature=shared

인간이 만든 위기가 음악에 침투해 재창작된 음악은 300년 전의 음악과는 사뭇 다르다. 활기찬 햇살과 새들의 노래가 어우러지던 봄은 더 이상 경쾌하지 않다. 새소리의 음정은 낮아지고, 햇살은 따뜻하기보단 거칠다. 여름의 태양은 무자비하게 나무와 사람을 시들게 하고, 폭풍은 더 격렬하고 불안해진다. 수확의 기쁨이 가득하던 가을은 불협화음 끝에 아예 침묵해 버린다. 짧아진 겨울은 음악의 쉼표를 생략하고, 급격한 음정 변화로 극심한 추위를 표현했다. 익숙했던 계절의 정서는 사라지고, 음울하고 낯선 멜로디만이 남았다.

생사의 기로에 선 세계 앞에서, 음악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종종 생각한다. 미국의 현대 작곡가 존 루서 아담스는 환경운동가이자 생태학자로, 음악으로 깊은 경고를 전한다. 그의 대표작 〈Become Ocean〉(2013)은 퓰리처상과 그래미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기후위기를 사운드로 구현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곡은 오케스트라를 세 층으로 나눠 서로 다른 흐름으로 연주하게 한다. 음악은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다 서서히 모든 것을 잠기게 만든다. 제목은 존 케이지의 말—"Eventually we will become ocean"—에서 따왔는데, 기후위기로 도시들이 잠기고, 문명이 침식되는 미래에 대한 은유다.

두 음악은 위로하지 않는다. 희망을 말하지도 않는다. 그저 어두운 미래 만을 예감한다. 그러나 어두운 2050년의 <사계>를 들으면, ‘이런 미래를 맞이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Become Ocean〉은 ‘이 바다에 삼켜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묻게 한다. 음악은 세상을 구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의 가슴에 가장 와닿는 언어로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될 것들을 말한다. “당신은 이 소리를 듣고도, 여전히 무관할 수 있는가?” 아마도 그것이 예술의 힘일 것이다.


* 2025년 07년 22일 '카이스트 신문'에 실린 글을 다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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