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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non Aug 21. 2020

백마 탄 왕자가 오기 전에, "나는 내가 지켜"

드라마 '하이에나', '동백꽃 필 무렵'



'제발 구하러 오지 말아줘'... 언제부턴가의 속마음

 주인공이 위험에 처했다. 육탄전이 벌어진다. 칼도 등장한다. 주인공은 물러서지 않는다. 호신용 스프레이를 뿌리고, 물어 뜯는다. 맞고 또 맞으면서도 악착같이 버틴다. 액션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드라마 ‘하이에나’ 속 주인공 정금자가 자신에게 보복을 하기 위해 찾아 온 의뢰인과 마주한 장면이다.

 10대 때 나였다면, 여성인 주인공이 (특히나 남성으로부터) 이렇게 맞고 있었다면, 그를 위기에서 극적으로 구해 줄 누군가를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30대가 되니 달라졌다. 누군가가, 특히 주인공에게 애정의 마음을 품고 있는 남자 주인공이 구하러 올까 봐 오히려 조마조마하고 있다.

 ‘다행히’ 정금자를 좋아하는 윤희재는,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도 남자 주인공인 만큼 상황을 미리 알아채고 “양아치 칼빵 조심”이라는 문자를 보내기는 했다.

 정금자의 변호에도 자신이 검사의 수사를 받는 상황에 짜증이 났던 의뢰인은 화를 내며 정금자를 찾아온다. “뭣도 아닌 년”이라는 의뢰인의 말에 정금자는 한 마디도 지지 않는다. “풀어줬으면 도망이라도 가. 교회 가서 기도라도 하던가.” 보석이라도 받아 일상 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줬으면 고마운 줄 알고 반성하고 살라는 의미였다. 이 말에 화가 나 결국 칼까지 들고 나타난 의뢰인이지만, 정금자는  이를 악물고 그 상황을 벗어난다.


"동백씨는 동백씨가 지키는 거였다."

 물론 꼭 여자 주인공이어서가 아니라, 극중에서 누군가 얼굴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맞는 장면을 보는 건 굉장히 힘들다. 그럼에도 이런 폭력이 난무하는 장면을 고무적으로 받아들인 건 ‘여자란 늘 약하기만 하다’는 고정관념을 깨줬기 때문이다. ‘하이에나’ 드라마가 진행되는 내내 정금자는 이렇게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악당으로부터 주인공을 구해줄 백마탄 왕자가 등장하기만을 기다리던 시대는 지났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가장 큰 반전을 선사해 준 드라마는 ‘동백꽃 필 무렵’이었다. 마침내 연쇄살인범 흥식과 홀로 대면하게 된 동백을 걱정하며, 황용식은 안타까운 독백을 남긴다. “동백씨는 내가 지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리고 이어지는 반전. “동백씨는 동백씨가 지키는 거였다.” 동백이는 자신이 지켜줘야만 하는 객체가 아니라, 스스로가 스스로를 책임지는 주체라는 중요한 진리를 깨달아버린 것이다.

용식이 동백에게 도착했을 때, 이미 동백은 가게 밖으로 도망치듯 떠난 흥식의 뒤통수를 맥주잔으로 가격한 뒤였다. “이거 향미 500잔”이라며 자신의 절친 향미 몫까지 그를 혼쭐 내준 뒤 “너 진짜 까불면 죽는다”고 말한다. 흥식은 ‘까불이’라는 이름으로 옹산에서 연쇄살인을 저지르며 동백에게 “까불지마”라는 메시지를 남겼던 인물이다. 그에게 “까불이? 고 자빠졌네”라고 응수하는 동백이 안겨 준 카타르시스는 어마어마했다. 그 뒤에 이어지는 옹산 게장 골목의 여성 파워까지.

 물론, 현실에서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맞고 있는 누군가를 봤을 때 모른 척하고 지나가거나 지켜보기만 하라는 말이 아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범죄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드라마의 진행을 위해 꼭 필요한 갈등이 있을 때, 여자 캐릭터는 말썽을 일으키거나, 문제에 빠지게 되고 이를 해결하는 게 남성 캐릭터라는 고정관념은 이제 구닥다리라는 뜻이다.
 


백마탄 왕자 말고, 주변의 친구들로도 충분하다

 드라마 속엔 주변인들의 조력 존재했다. 동백이를 용기내게 하고, 지켜준 건 동백이에게 전화를 걸어준 이웃 주민들과 물론 황용식이었다. 옹산 주민들이 동백이에게 “가게로 가니까 있어봐”라며 그의 밥을 챙기고 안위를 걱정하는 모습에 결국 흥식이는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하이에나'에서 다친 정금자에게 "병원부터 가야겠다"고 말을 건넨 건 함께 일하는 여성 동료였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악당(?)을 물리친 이들의 복수는 더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금자도, 동백도 이들을 경찰에 무사히 인계한다. 정금자는 벽돌을 집어 들었다가 경찰을 부르고 발길을 돌린다. 짜릿하되 선을 넘지 않는다.

 영화 ‘캡틴마블’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여성은 슈퍼 히어로의 조력자일 뿐이거나, 혹은 슈퍼 히어로로부터 보호받아야만 하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도 슈퍼 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무의식 중에라도 갖게 된다는 건 중요하다. 물론 캡틴마블처럼 천하무적까지 바라는 건 아니다. '하이에나'와 '동백꽃 필 무렵'에서 남자 주인공은 끝까지 백마탄 왕자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넘치는 사랑을 주되 묵묵히 조력자로 남는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조마조마해 하는 순간들이 줄어간다는 건 드라마 덕후로서 누구보다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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