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의 연애시절, 남편은 일주일에 적어도 두세 번 이상의 부서 회식을 가졌다. 나는 그 모임이 회식이 아니라 그 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집에 가기 전에 저녁을 해결하며 습관적으로 술을 곁들이는 ‘술자리’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뭐. 어쨌든 늘 주도하는 상사가 있어 매번 거절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내 눈치를 보며 구태여 그 자리에 빠지는 것은 나도 원하지 않는 일이었지만, 일단 술자리에 가면 그날은 무조건 고주망태가 되는 것과, 술 마시는 동안 연락 두절되는 것이 문제였다.
술자리를 갖는 연인의 연락 횟수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물음에 답하시오.(3점)
에 대한 정답이 없다는 건 모두 알고 있을 거다. 연인 및 배우자가 연락 한 통 없이 새벽까지 술자리를 가져도 전혀 개의치 않고 믿음으로 승화시키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나처럼 오만가지 상상을 하며 불안해하고 상대를 야속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다. 시간이 늦었으니 연락 한 통 해주면 이렇게 불안하지는 않을 텐데, 지금쯤이면 2차가 끝나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어떻게 연락 한 통 없지? 어디서 발을 헛디뎌 구른 건 아닐까? 택시에서 잠들어버린 걸까? 자리를 옮길 때나 술자리가 세 시간이 넘어가면 연락 주면 좋겠다고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또? 등등. 나만의 망상은 결국 서운함으로 바뀌어 상대에게 화살을 돌리게 된다.
오히려 연애 초창기에는 남자 친구의 술자리 연락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았다. 다 큰 성인이고 본인의 인생이니 어디 계단에서 구르던 여자가 있는 술집에 가던 본인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이며 내가 상황을 알게 되면 그땐 깔끔하게 관계를 정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남이 지속되고 이 사람에 대한 마음이 커질수록 더 이상 ‘남’ 얘기가 아닌 문제가 되어버렸다. 몇 차례의 협의가 무색하게 또다시 상황이 반복되자, ‘만약 이 사람과 결혼했을 때, 일주일에 두세 번을 전화통을 붙잡고 불안해하는 모습으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년이 되어서도 늦은 귀가에, 고주망태에, 연락한 통 없는 남편 때문에 불안해하며 살고 있을 생각을 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나는 상대가 술자리에 가면 종종 내게 연락을 해서 안심시켜주길 바라는 사람이다. ‘사람은 절대 안 바뀐다.’는 말처럼 어쨌든 내가 바뀔 확률은 희박해 보였다. 그리고 굳이 그를 내가 원하는 방식에 맞추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애초에 나와 맞는 사람과 만나는 게 서로에게 더 편한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마음이 짜게 식어갈 무렵 자취방 현관의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혼자 사는 자취방이고 이 시간엔 더더욱 올 사람이 없는데. 삑 삑삑 삑. 틀렸다. 상대는 도어록 뚜껑을 내렸다 올리고 다시 비밀번호를 눌렀다. 불안에 떨며 112를 불러야 할까 싶은 마음에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의 잠금을 풀었다. 문 밖에서 두 차례의 시도 끝에 비밀번호를 맞추고 들어온 상대는 다름 아닌 남자 친구였다.
잔뜩 취한 남자 친구가 갈지(之) 자를 그리며 휘청휘청 내게 다가왔다. 순간 안도와 분노가 한꺼번에 몰려오며 눈물이 났다. 이 모든 상황에 놓인 내가 처량하게 느껴졌다. 풀린 눈으로 웃으며 나를 안으려는 남자 친구를 외면하며, 옷장을 열어 몇 안 되는 남자 친구의 물품을 꺼내 봉지에 쑤셔 넣었다.
이거 가지고 얼른 가. 다시는 오지도 말고 연락도 하지 마요.
다음날, 술이 깬 남자 친구는 전화를 받지 않는 내게 계속해서 카톡으로 사과를 하고 전화를 했다. 울리는 전화기를 보며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사람은 안 바뀌어.’라고 스스로 되뇌이며 남자 친구의 연락을 모조리 무시했다. 저녁시간이 지났을 무렵, 남자 친구에게서 ‘마음 잘 알겠어요. 미안해요. 하지만 얼굴 보고 끝내고 싶으니 차 한잔 해요.’라는 연락이 왔다. 사실 사랑에 빠진 어떤 이들이 하는 말인 ‘이것만 빼면 정말 괜찮은데..’하는 마음이 그 당시에는 절실히 이해가 갔기에 정말 끝낼 마음 반, 보고 싶은 마음 반으로 그의 제안에 응했다. 만난 자리에서 남자 친구는,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돌려볼 요량으로 진심 어린 사과와 앞으로 자신이 지킬 것들을 이야기했다. 술자리에서 틈 날 때마다 종종 전화를 할 것, 되도록 12시 전에 귀가할 것, 택시를 탈 때는 반드시 전화할 것, 술을 가능한 적게 마시려고 노력할 것 등등. 그리고 말미에 당장 모든 것을 한순간에 바꾸긴 어렵겠지만 차근차근 나아질 테니, 시간을 가지고 지켜봐 달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렇게 1년여를 만나고, 결혼생활도 2년이 가까워 오는 오늘. 전 남자 친구이자 현 남편의 회식 날이다. 혼자 먹을 저녁 메뉴를 고민하며, 친구를 만나서 오랜만에 술 한잔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접었다. 친구들과 식사를 하는 도중, 남편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30분에 한 번꼴로 전화벨이 울려대기 때문이다. 너무 자주 전화를 받으러 나가는 나를 보며 너네 오빠 자상하다, 일일이 보고도 하고. 하며 약간의 부러움을 가졌던 친구들도 이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나는 이렇게나 바뀐 남편이 신기하기도, 좋기도 하지만, 친구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대화의 흐름이 자주 끊겨 미안한 마음이 들기에 남편의 회식 날에는 되도록 혼자 저녁을 해결하려고 한다. 노력하는 남편이 고마워, 수시로 거는 전화를 기쁜 마음으로 받으려고.
도어록 소동이 있던 날부터 남편은 차츰 꾸준히 회식 횟수를 줄여갔고, 피치 못하게 참석해야 하는 자리에서는 틈 날 때마다 연락을 했다. 그리고 열두 시를 넘겨 집에 들어온 적이 없다. 다만 가끔 만취(..) 한 상태로 올 때도 있지만 택시를 잡아타고는 꼭 연락을 주기에 예전처럼 막연히 기다리는 일도 없어졌다. 이제는 나도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고 남편에게 내 걱정은 말고 천천히 즐기다 오라. 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너무 자주 전화를 하는 남편이 살짝 성가신(!)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이제는 습관으로 굳어져버린 그의 노력들이 너무나도 고맙다.
‘사람은 쉽게 안 바뀐다.’라는 말에 나도 백 번 공감한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니고, 본인조차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어렵더라도 조금씩 바꿔 나갈 수는 있다. 다만 당사자의 노력과 지켜보는 사람의 기다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보통 여기서 문제는, 당사자의 노력은 없이 ‘지켜보는 사람의 기다림’만으로 관계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당사자는 ‘입으로만’ 노력하는데, 바뀔 의지가 없는 연인을 하염없이 기다려주는 것은 너무도 미련한 일이다. 차라리 애초에 나와 맞는 성향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게 노력과 수고를 더는 지름길일 수 있다. 다만 상대가 우리 관계를 위해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한다면, 그때는 한 발 물러서서 칭찬과 고마움을 표현해 주자. 그럼 그는 그 칭찬을 자양분 삼아 합의한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쉬울 거다. 둘의 관계를 위한 노력은 혼자가 아닌 둘이 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