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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ti Jan 30. 2020

필라테스 창시한 분 어디 계신가요.

참담한 자세로 땀 흘리는 모두의 허리가 꼿꼿해지는 그 날까지


결혼 후 급격하게 늘어가는 몸무게에 제동을 걸기 위해, 얼마 전 우리 집 근처 회사에 다니는 친구와 함께 주 2회 강습을 받는 필라테스 학원을 등록했다. 우리 둘 다 근육이 거의 없는 참담한 몸이라, 서로의 비틀대는 모습을 보면서 위안을 얻어가며 운동하곤 했는데 이번 주는 내가 약속 시간을 착각해 스케줄이 꼬여버려, 강습을 다른 요일로 옮겨 혼자서 수업을 듣게 됐다. 혼자 낯선 교실, 낯선 이들 사이에서 땀을 뚝뚝 흘려가며 처량한 몸놀림으로 자세를 잡았다. 선생님께서 어떤 어떤 자세가 나오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셨는데,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보니 딱 내가 하고 있는 자세였다. 어깨는 잔뜩 올라가고 허리는 잔뜩 휜 채로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났다. 하지만 웃음도 잠시,


엉덩이를 들어 올리세요! 가 끝나기도 전에 엉덩이가 바닥으로 툭.

옆사람을 찌른다는 느낌으로 다리를 옆으로 들어 올리세요! 하자마자 다리가 힘없이 툭.


주변을 열심히 흘끔거려봤지만 누가 봐도 나는 명백한 열등생이었다. 아니 이 정도 역량 차이는 반칙이 아닐까, 조물주가 나를 만들 때 몸과 관련된 스탯에는 깜빡 잊고 포인트를 할당하지 않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들을 했지만 결국 여태 운동 않고 막살았기 때문이겠지.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운동을 하는 동안은 진지하게 필라테스를 개발한 사람이 누군지, 대체 왜.. 이렇게 사람을 잡을 수도 있는(?) 운동을 세상에 내놓은 건지 약간의 의문이 들었다. 그와중에 맞은편 캐딜락(필라테스 기구의 한 종류)에서 열심히 시연 중인 선생님을 보니 몸이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에 있는 작은 필라테스 학원이지만 선생님은 본인의 건강을 위해, 또 수강생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을 위해 끊임없이 관리를 하고 공부를 하시겠지.



사실 여태 어려운 동작을 할 때마다 ‘나는 어차피 저만큼 다리를 못 올릴 거야.’ 혹은 ‘이 정도만 해도 대충 운동되겠지.’라는 생각이 들어 설렁설렁했었다. 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버티기 힘드니까, 쉽게 주저앉아버리거나 스스로 버틸 생각을 않고 옆에 봉을 잡는다거나 하는 거다. 하지만 오늘 휘청휘청거리면서도 끊임없이 시도하는 옆 수강생과, 꼿꼿하게 자세를 유지하며 흔들림 없는 선생님을 보니, 본인의 몸을 위해 노력의 과정을 버티는 이들이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처음부터 잘 하진 못하겠지.(운동능력 스탯으로 몰빵 된 이들을 제외하고) 자세가 무너져도 일어나고 또 일어나서 언젠간 나도 꼿꼿하게 버틸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어쨌든 운동이 아직까지는 내 정신건강에 별로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다음 수업이 벌써부터 두렵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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