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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ti Jan 05. 2020

아이 낳겠다는 말, 취소할게요.

고민 끝에 뱉은 남편의 말



얼마 전 남편이 완전한 딩크 선언을 했다.    

우리 부부 모두 결혼 전부터 딩크로 마음을 굳혔었다. 둘 다 원체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데다 다른 종류지만 어쨌든 부모로부터 비롯된 상처를 받았던 터라, 우리는 미숙하며 ‘부모가 되기에는 부족한 인간들’이라고 의견을 합쳤었다.            



하지만 결혼 후 안정적인 나날을 보내고, 서로에 대한 애정이 더욱 깊어가는(적어도 나는!) 과정에서 우리를 반 반 닮은 아이를 낳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너 나할 것 없이 생겨났다. 남편은 티브이에서 여자 아이를 볼 때마다 우리 아이도 저렇게 예쁠까? 아마 더 예쁠 거야.라는 말을 했다. 나 또한 하얗고 예쁘장한 남자아이들을 만나면 남편 얼굴을 겹쳐 그려보며, 남편을 닮은 남자아이를 떠올려보곤 했다. 이렇게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아이생각에 ‘나도 별수 없이 번식을 원하는 동물이군.’이라 생각하며 웃었다. 이후 우리는 둘이 종종 술을 마시며 2세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전망도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충분한 의논 끝에 2020년까지만 신혼을 즐기고 2021년부터 노력해보자는 이야기로 끝을 맺었던 게 저번 달인데, 남편이 돌연 뱉은 말을 주워 담은 거다.     





   


남편의 일방적인 결정을 들으니 서운함이 앞섰다. 다시 논의해보자는 것도 아니고, “나는 아이는 낳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낳고 싶지 않아요.”라니. 남편의 한 마디에 마치 나는 아이를 원하고 남편은 거부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나도 자신이 없었지만 남편과 의견이 맞았기에 감히 꿈꿀 수 있었던 건데, 이제와 말을 바꾼 남편을 굳이 설득해야 하는 건지 고민이 되었다. 마치 나를 거부당한 것만 같은 느낌을 애써 지우며 남편에게 물었다. 마음이 바뀐 이유가 무어냐고. 혹시 내가 부족해서냐고. 순간 다 나은 줄만 알았던 나의 오랜 고질병이 도진 거다. 마음 깊은 곳에서 자책감이 차근차근 올라왔다. 보통 그 병은 사건 발생-> 문제 파악-> 문제의 원인 탐색-> 문제의 원인=나? 의 전철을 밟는다. 부모로서의 내가 부적격할 거라고 남편이 판단한 것이 아닐까.라는 것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괴감과 속상함이 밀려왔다.        




내 말을 들은 남편이 펄쩍 뛰었다. 손사래를 치며 절대 그런 게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나를 보면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더 든다고 했다. 하지만 첫째로 아이를 낳으며 상하는 몸은 자신이 아니라 아내인 나일 것이므로 실상 자신은 낳자는 말을 하는 것조차도 미안하다고 했다.

둘째는,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이후 자신의 어린 시절을 찬찬히 돌아봤다고 했다.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 없이 자랐지만, 가족 중 누구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평생 지우기 어려웠다고 했다. 아주 어릴 적부터 가졌던 그 생각은, 사춘기와 20대를 지나며 가족 구성원에게서 어떠한 감정적 기대도 하지 않는 방식으로 굳어졌다고. 가족 중 한 명과 평생 나눈 대화 시간을 가늠해보면 채 몇 시간이 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아직도 형제들과 가깝게 지내는 나를 보며 부러운 마음 반, 신기한 마음이 반이었고, 늘 방에서 그림을 그리며 혼자 놀았던 자신을 떠올리게 되었다고 했다. 혼자 있는 게 익숙해져 나중에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 불편했고, 그런 남편을 걱정한 가족들이 억지로라도 놀이터에 나가서 놀게 하면 자살을 떠 올릴 정도로 싫었다고 했다. 보통의 부모들이 할 수 있는 가벼운 강요조차 죽음과 연관 지을 정도로 예민한 아이였다고 했다. 그리고 만일 자신과 닮은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다면?이라는 생각을 하자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고 했다. 아무리 조심하며 키우더라도 자신은 부족한 사람이니, 자신이 겪은 감정을 아이가 겪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어린 시절 엄마의 부재와 가난이라는 상처를 가진 나와, 내가 동경하던 부족함 없는 생활수준과 부모님 모두를 가졌지만 또 다른 자신만의 문제로 힘들어했던 남편. 남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역시 우리가 아이를 갖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또 우리 부부는 딩크 쪽으로 돌아섰지만, 한 편으로 아이를 낳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신중하게 고민하고 선택을 번복하는 이 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좋은 부모가 될 것이라는 굳건한 자신감을 가지고 아이를 갖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자신감만 가지고 덤벼들 문제는 아니니까. 더군다나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 아닌가. 입으로는 우리 부부 둘 딩크에 다 합의를 했지만 또 언제 결정이 바뀔지는 모르는 일이다.

서로를 더욱 사랑하게 될수록 뭉게뭉게 생겨나는 2세에 대한 욕구를 얼만큼 더 참아낼 수 있을는지는 두고 봐야 할 듯싶다. 만일 딩크로 완벽한 결정이 선다면 남편이 병원에 가서 사정없이 묶어버리기(?)로 했지만 아직은 병원에 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완전한 씨 없는 수박이 되기엔 아직 아쉽다나.         






좋은 부모에 대한 가치관을 각자 스스로 끊임없이 재정립하고, 부모라는 자격에 자신을 대입하고, 좌절하기도, 가끔 희망적으로 생각하기도 하는 우리 부부. 아주 만일 아이를 낳는다면 그래도 중간은 가지 않을까, 하고 감히 생각해 본다. 적어도 ‘낳아놓으면 알아서 다 커.’라고 생각하는 이가 우리 둘 중에 한 명도 없기 때문에. 반대로 내가 부모로서 자격이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좌절했기 때문에. 둘이 결심을 하고 향하는 곳이 비뇨기과던 산부인과던 간에 어쨌든 우리 부부 스타일대로 선택하겠지 싶다. swag 넘치는 아기띠를 한 애엄마와 애아빠가 될 수도, 원할 때면 언제든 해외로 떠나는 YOLO 딩크 부부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 부부만의 스타일대로.


글을 쓰다 보니 나조차 3년 뒤의 내 모습이 궁금해진다. 글을 쓰는 내 옆에 꼬물대는 아기가 앉아 있을까? 아니면 동남아 어디쯤에서 마가리타를 마시며 누워 있을까? 

음. 둘 다 너무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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