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반 시절, 막연히 토익공부가 하기 싫다는 이유와 더불어 당장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입장이라 대충 조건에 맞는 회사에 입사했다. 흥미와 적성을 고려하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대다수의 결과가 그렇듯 회사에 다니는 내내 고통스러웠고, 선임의 텃세 또한 업무와는 별개로 나를 힘들게 하는 또 하나의 문제였다. 결국 도망치듯 사표를 던지고 엄마가 사는 지역으로 내려갔다. 엄마가 하시는 가게 일손이 부족한 것이 내게는 어쩌면 다행이었다. 처음 2~3주는 별문제 없이 가게에 나가 일을 도왔다. 홀을 쓸고, 닦고 그릇들을 정리하고 손님을 맞고 상을 치우고. 단순하게 생각했었고 일은 단순했다. 다만 가족과 하루 종일 붙어있는다는 것, 그리고 함께하는 그 24시간 안에 ‘함께하는 업무’가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나날이 늘어가는 크고 작은 부딪힘들과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자, 당장 몰두할 수 있는 게 뭘까 하다 불현듯 ‘운전면허증’이 떠올랐다. 회사생활을 하면서는 잦은 야근과 주말에도 계속되던 업무 때문에 엄두도 못 냈었는데, 재취업 전에 미리 따두면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학원에 있는 동안만큼은 엄마와 떨어져 있을 수 있을 터였다. 곧바로 면허학원을 알아보고 등록했다. 물론 운전면허 취득 과정에서도 도로주행 연습을 엄마와 하며.. 뭐 작은 다툼들이 있었지만, 결국 아빠의 도움을 받아 주행코스를 몇 번이고 돌아본 뒤에 시험에 응시했고, 끝내 취득할 수 있었다.
면허를 땄으면 일단 운전은 다 꽤 하는 거 아냐? 자주 하면 되지, 왜 이 좋은 면허증을 처박아둬서 ‘장롱면허’라는 단어를 만든담. 이라던 내 생각은 머지않아 (장롱은 아니지만) 책상 서랍 한구석에 합격 도장이 찍힌 임시 면허증을 처박아두는 현실이 되었다. 내가 너무너무 불안했던 엄마는 절대로 내게 차키를 넘기지 않았고, 나 또한 내가 무서웠다. 보통 초보 시절에는 맞은편에서 오는 차의 속도를 보며 무서워한다던데, 나는 내가 더 무서웠다. 아마 도로주행 연습 중에 엄마에게 혼났던 기억 때문일까. 그 이후로 약 3년간 나는 운전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면허증도 신청 만기일 직전에 부랴부랴 가서 받아왔으니 뭐.
그러다 결혼 후 다시 운전에 대한 생각이 슬금슬금 들었다. 혼자 드라이브를 가거나, 장을 보고 나서 낑낑대고 들고 오기보다는 폼나게 트렁크에 턱, 하고 싣고 집으로 돌아오면 왠지 멋있을 것 같았다. 이런 내 얘기를 들은 남편은, 꼭 자신이 베스트 드라이버로 만들어주겠노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물론 그 꿈은 여전히 실현 가능하지 않아 보이지만. 어쨌든 짧은 거리나, 가봤던 목적지는 내가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건 전제조건은 조수석에 남편이 꼭 타 있어야 한다는 거였다. 역시나 3년 만에 운전대를 잡아서인지 차로의 중앙으로 달리는 것조차 힘들었다. 백미러를 보아도 옆 차선의 차가 어디쯤에 있는 건지 감도 오지 않았다. 좌측 깜빡이를 켠 채로 끼어들지 못한 채 몇 분간을 달리기도 했다.
그렇게 거북이처럼 시내를 살살 돌다 보면 어김없이 빠-앙- 하고 클락션을 울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고는 굳이 창문을 내려서 내 차창을 노려보며 가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맨 앞에서 신호대기를 하다가 파란불로 바뀌고 출발하려는 1,2초를 못 기다리고 뒤에서 클락션을 울려대는 경우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도로 위에서의 평균적인 사정을 모르는 나는, 내가 뭔가 큰 잘못을 한 것 같아 주눅이 들었고, 남편에게 다신 운전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남편은 “늘 처음은 누구나 어렵죠. 포기하지만 않으면 돼요.”라는 말로 나를 위로했다.
운전대만 잡으면 심장이 뛰고 머리가 멍해지는 경험을 몇십 번쯤 했을까. 1년 정도를 남편을 꼭 옆에 태우고 운전을 했다. 지치고 피곤한 날에도 ‘나중에 혼자 차를 끌고 다닐 때 지치고 피곤하다고 차를 버리고 올 수는 없잖아.’라는 생각을 하며 굳이 굳이 내가 운전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즈음, 막연히 바다가 보고 싶은 마음에 이번에는 혼자 다녀와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운전대를 잡았다. 텅 빈 조수석의 무게와 반비례하게 마음은 너무나도 무거웠지만, 언제까지고 남편을 태워서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정한 목적지는 제일 가까운 바다인 월미도였다. 그렇게 수백 번의 심호흡을 동반한 나 홀로 도로주행이 시작됐다. 혼자 하는 드라이브는 생각처럼 멋지지 않았다. 드라이브고 뭐고 일단 생존하는 게 더 중요했으니 그럴까? 그렇게 어렵사리 살아서(?) 도착한 월미도에서 사 먹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오징어튀김은 꿀맛이었다. 카페에서 얼마나 늑장을 부렸을까. 슬슬 출발해야지 하던 찰나에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제 퇴근하고 회사를 나서는 길이라고 했다. 조심히 잘 오라고, 나도 이제 출발해야겠다고 하니, 남편이 놀라며 아직 월미도에 있냐고 물었다. “지금 퇴근시간인데, 혼자 잘 올 수 있겠어요?”
맙소사. 초보운전자는 왼쪽, 오른쪽 방향지시등과 백미러, 그리고 에어컨 온도 조절뿐 아니라 퇴근시간대의 도로 사정까지 고려해야 했었다. 도로 위에 줄지어선 차들 틈에 나와 내가 조종하는 무기(?)도 함께 서 있을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득했다. 정체된 도로에서 내가 과연 끼어들기를 할 수 있을까. 여태 막연히 머리로만 생각했던 ‘차를 버리고 올 순 없잖아.’의 순간이 바로 지금이었다. 차를 버리고, 지금 눈앞에 보이는 저 버스를 타고집에 가고 싶었다. 조금 더 기다리다가 느지막이 출발하면 될 거라는 남편 말에 차에 앉아 시동을 걸고 음악을 켰다. 대충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쯤 기다리면 조금 여유로워질 거라고 했다. 지금 내비게이션을 찍어보니 집까지 약 50분. 막혀서 이 시간이 나온 것을 감안하고 한 시간 뒤에 출발을 한다고 가정해보면, 운이 좋아도 약 두 시간 뒤에나 집에 가서 씻을 수 있을 터였다. 이렇게 앉아서 정체가 풀리길 기다리는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내가 정말 무서워하는 게 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사고가 나는 것? 보험으로 처리하면 될 것 같은데. 내가 다치는 것? 거북이 운전을 하는 내가 회생 불가능할 정도로 다칠 확률은 낮아 보였다. 사람을 치는 것? 그래, 이게 제일 무섭지. 그럼 횡단보도와 신호만 조심하면.. 집에 갈 수 있을 수도?
혼자 퇴근길 정체를 뚫고 집에 오는 길이 어땠냐고 묻는다면, 입고 있던 티셔츠가 흠뻑 젖었다고 말할 수 있다. 손에도 땀이 나서 몇 번을 허벅지 춤에 닦아내며 왔다. 목을 쑥 빼고 정찰하는 미어캣의 손에 핸들이 들려있는 모양새로 어찌어찌 집에 왔다. 자신과 비슷하게 집에 도착한 나를 보며 남편은 대단하다고 치켜세워줬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에는 ‘내가 해냈다.’와 ‘운전은 정말 못할 일이구나.’가 공존했다. 그리고 지금은, 혼자 장도 잘 보러 다니고 훌쩍 월미도에 가서 뜨끈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고 돌아오기도 한다.
가끔,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라고 나를 의심하는 때가 온다. 새로운 운동을 시작할 때나 2세 계획을 세울 때, 혹은 누군가를 만나 설득하여 지지를 이끌어내야 할 때 등등. 보통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새로운 분야나, 여러 돌발상황의 가능성이 있어 뒷일을 장담할 수 없는 일을 시작해야 할 때 그렇다. 그럴 때마다 우습지만 나는 내가 처음 홀로 운전대를 잡고 월미도로 떠났던 날을 생각한다. 차를 버리고 싶을 정도로 막막했지만 그래도 포기 않고 어찌어찌 끌고 왔던 날의 기억을. 그리고 도전 과정에서 혹여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피하지 않고 내가 책임을 지면 되겠지,라고 생각할 정도의 작은 배짱도 생겼다. 아직도 초행길을 갈 때는 긴장하고, 정체된 도로는 조금 골치 아프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피할 궁리를 하지는 않는다. 오늘 내가 이 초행길을 왕복한다면, 이제 내게 그 길은 가봤던 길이 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