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할머니와 아빠를 포함한 우리 삼 남매 모두 슬라이스 치즈를 좋아했다. 그나마 형편이 좀 나았던 유치원 시절에는 ‘앙팡’에서 나온 하얀색 칼슘치즈를 핑구 비디오를 틀어놓고 보면서 죽죽 뜯어먹었던 기억이 있다. 치즈를 손바닥과 손가락으로 찰흙마냥 동글동글 굴려서 떡처럼 뭉친 뒤 베어 먹기도 하고(입에 들어갈 시점이면 대개는 회색으로 변해있었다), 혀 위에 올려두고 살살 녹여먹기도 했다. 그 당시도 그리 넉넉지는 않던 형편이라 삼 남매 각자에게 한 장씩 배분되었는데, 나는 종종 내 것은 진즉에 다 먹어버리고는 엄마 눈치를 살피며 아끼고 아껴먹던 여동생 몫의 치즈를 죽 찢어 떼어먹고 도망을 갔었다. 순한 여동생은 저도 남동생 걸 뺏어먹는 대신, 입만 삐죽삐죽 내밀며 소리 없이 울었다.
엄마가 떠난 뒤 삼 남매의 끼니를 책임지러 친할머니가 오셔서 함께 살았던 시절에는 치즈가 배분되지 않았다. 자유롭게 냉장고에 두고 각자 꺼내 먹었다. 그러니 20개 들이 한 봉을 사 오면 사나흘만에 금세 동이 났다. 한창 사춘기에 접어들어 체중변화에 예민했던 나는 예전처럼 치즈를 찾아먹지는 않았지만, 간혹 할머니가 억지로 쥐여주면 못 이기는 체 한두 장씩 먹곤 했다.
할머니와 나, 그리고 여동생이 함께 쓰던 안방에는 커다란 서랍식 농이 있었다. 맨 아랫칸은 할머니, 그 위칸은 여동생, 아래에서 셋째 칸은 내가 사용했다. 맨 위칸과 그 아랫칸은 철이 지난 교복이나 겨울 외투 등을 뭉쳐서 넣어두는 용도였다. 며칠 전부터 여동생이 얼마 전 친구에게서 선물 받은 라코스테 양말을 눈독 들이던 나는, 오늘 딱 하루만 몰래 빌려 신자는 마음으로 여동생의 서랍을 열었다. 동생보다 먼저 들어와서 후다닥 빨아 베란다 구석에 널어둘 참이었다. 하지만 어디다 꽁꽁 숨겨뒀는지 안 보여서 한참을 뒤적거리던 차에, 양말 무덤 밑으로 맨질맨질한 무언가가 만져졌다. 힘을 주어 끄집어 내 보니 실온에 물러진, 말랑말랑한 슬라이스 치즈 두 장이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냉장고에 아직 많은데‥. 나도 요즘 거의 안 먹는 데다 할머니와 아빠가 드셔 봐야 얼마나 드신다고. 어린 남동생과 나눠먹는 게 그렇게도 싫었을까? 에 까지 생각이 미치자 슬그머니 화가 났다. 공평하게 먹어야지. 어떻게 저만 알아.
하지만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여동생의 서랍을 뒤졌던 나는 내색하지 못했다. 결국 양말도 못 찾고 뒤숭숭한 기분으로 나는 친구와의 약속을 취소했다.
외출했던 여동생이 돌아왔다. 아까 내가 찾고 있던 라코스테 양말을 신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소리와 함께 여동생은 바로 냉장고로 직행했다. 슬라이스 치즈를 한 장 들고 와서는 내 옆에 털썩 앉아 티비로 시선을 고정했다. 여동생은 바스락바스락 치즈 포장을 야무지게 접어가며, 흰 양말 속에 든 발가락을 꼼지락꼼지락 거려가며 치즈 한 장을 맛있게 먹었다. 짐짓 모른 체 하며 나도 티비를 보고 있는데, 여동생이 일어나 다시 냉장고로 향했다. 냉장고 문을 여는 순간, 주방에서 나물을 다듬던 할머니가 큰 소리로 말했다.
야야, 느그 언니랑 동생 거는 남겨이지 니는 니만 아냐.
그 말을 들은 동생이 잠깐 멈칫 하더니 갑자기 할머니를 쏘아보며 소리를 질렀다.
물 마시려고 한 거야. 그리고 이렇게 많은데 난 왜 두장 먹으면 안 돼? 언니랑 동생이 두 장 먹을 땐 아무 말도 안 하면서!
이렇게 가난한 집 안에서조차 더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 집안의 장손녀와 늦둥이 아들 손주 사이에 위치한 여동생의 포지션은 할머니에겐 그리 신경 쓸 것이 못되었다. 가난한 집의 아이들 중 유독 마음이 더 시렸던 아이.
두 장째의 치즈를 먹으며 꾸지람을 들을 때, 먹기 싫다는 언니에게는 맛이라도 보라며 꾸역꾸역 치즈 두 장을 건네는 할머니를 볼 때, 언니와 남동생에겐 당연한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닐 때, 그래서 치즈 두 장을 양말 밑에 숨길 때.
그 아이의 마음은 양말 뭉치 밑에서 녹아 엉망인 치즈만큼 짜게 찌그러졌을 거다.
동생의 습관은 성인이 되고 자연스레 사라졌다. 함께 자취를 하면서 퇴근 후 둘이 집에서 가끔 술잔을 기울이곤 했는데, 동생은 그때마다 슬라이스 치즈를 빼놓지 않고 내왔다. 삼각형 모양으로 껍질을 벗겨 먹기 좋게 가위로 자른 치즈를 까서 입에 쏙 넣고 오물오물 씹으며,
언니. 냉동실에 치즈 많이 얼려놨어. 냉장고에 있는 거 다 떨어지면 꺼내서 녹여 먹어. 한다. 입에 든 것을 넘기기도 전에 하나를 집어 조금 뜯어서 옆에 있는 강아지 입에도 쏙, 껍질 벗겨 내 앞접시에도 하나, 공평하게 놔준다.
여동생은 제 것을 스스로 잘 챙기고, 옆에 있는 이도 챙기는 야무진 사람으로 자랐다. 하지만 집안의 어떤 문제로 인해 셋이 금전적인 힘을 합쳐야 할 때면, 여동생은 아직 자기 몫을 내놓길 주저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서운한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서랍 속 치즈 두 장을 떠올린다. 자신이 자신을 챙기며 살아왔을 동생의 날들을 생각하며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다.
결국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았던 치즈처럼, 아직 남은 집안의 문제들 만큼은 공평하지 않게 내가 조금 더 짊어지고 가려한다. 동생이 살아왔던 지난날을, 감히 어렴풋이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고. 늦은 미안함을 전하는 마음을 동생이 언젠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