돕지 않아도 될 핑계
사람들은 어쩌면 자신을 구원해 줄 누군가를 찾는 여행자일지도 몰라.
한없이 슬프게, 그 누구보다 아픈 목소리를 내고 있는 한 여인의 목소리가 지하철에 메아리친다.
“저희 남편이 곧 수술을 해요. 한 번만 도와주세요.”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안 계세요. 제발 한 번만 도와주세요.”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그녀의 목소리에 반응하며, 사람들의 시선이 힐끗 그녀에게 머물렀다가 곧 각자의 자리로 흩어진다. 다시 손안에 작은 휴대폰 화면으로, 의미 없는 아래로의 시선으로, 질끈 감은 눈으로 그녀의 목소리에 대응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저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었을 뿐인데, 자신에게 이롭지 않은 그녀에게 조금의 관심이라도 줄 여유가, 그러한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녀는 단 한 번의 도움 요청을 권유해 보고는 어려운 발걸음과 함께 다음 칸으로 이동한다. 진성은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에 사람들의 반응을 궁금했지만,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저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다름없는 시선으로 그녀를 보내고 있었다.
진성 또한 그러한 경험이 있었다. 제발 한 번만 나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목소리를 내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려고 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는 누구도 잠깐의 관심을 넘어 그것을 유지시키는 것에는 실패했다. 자기 연민에 빠져있는 사람의 모습처럼,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처럼. 그저 그를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으로 바라보며 잠시의 연민만 보내줄 뿐이었다. 어느덧 시간을 흘려보내서 진성이 그 시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을 때에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그렇게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떠나가 버린 그녀에 대한 생각은 점점 멀어져 갔다.
그의 목소리와 눈빛은 달라졌다. 죽어가는 눈빛을 버리고, 활활 타오르는 장작 같은 목소리를 낸다. 그리고, 그런 신호를 사람들에게 보내며, 자신이 얼마나 이로워질 것인지 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내려고 노력했다.(여기서 말하는 신호는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는 눈빛이다.) 사람들은 그의 의지를 확인한 순간, 조용히 그를 도왔다. 드러내지 않았지만, 은은한 도움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드디어 어둠 속에 갇힌 연민의 터널 속에서 빠져나와 자신을 구원해 줄 누군가를 찾는 것을 멈춘 것에 스스로 환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자신이 비로소 온전하게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롭게 하겠다는 자세, 그 자세를 갖추자 사람들은 진성이 다시 재기할 수 있도록 은은한 도움의 손길을 내어 주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어쩌면 모두 자신을 구원해 줄 누군가를 찾는 여행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여행 끝에 누군가는 깨닫는다.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연민 속 동정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사람들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서게 된 누군가는 그렇게 다른 누군가에게 은은한 도움을 주는 지원자가 된다. 이러한 지원자가 되기 위해서는 여인처럼, 과거의 진성처럼 여행자가 되어봐야 할까?
진성은 어쩌면 이러한 생각에 잠기면서 그 여자를 돕지 않아도 될 핑계를 꾸며내었다. 자기 자신은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도와주세요”라는 구슬픈 목소리는, 진성이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의 머릿속에서 희미해졌다. 마치 지하철의 소음 속으로 흩어져 버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