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모으는 힘은 태도에서 나온다.
한 사람의 삶은 꽃이 피다 지는 것처럼 결국 끝이 있다. 지게 될 때, 찬란했던 시절을 기억해야 하는데 그 기억이 없으면, 기록이 없으면 남아있는 사람에게 의존해야 할까 봐 괜시리 마음이 쓰였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면, 마음이 안 쓰일 수가 없다.
그런데 사람 모두를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는 없나 보다. 직계가족이 아닌 이상, 내 삶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우선순위를 부여하며 살아야 하니까. 내 눈에 그 사람이 들어온 것은, 어쩌면 내가 ‘순위를 매겨야 할 대상’이 잠시 비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애초에 그 사람은 순위를 매기기 전에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었을지도.
비행장 사람들은 검은 항공잠바로 추위를 덮고 모여 있다. 그들이 이곳에 모일 수 있었던 것은 한 사람 덕이다. 비행장을 운영하는 사람. 그가 이곳을 열어두지 않았다면, 우리는 눈이 온 다음 날의 신선한 공기를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여전히 살아있다는 느낌을 얻어갈 수도 없었을 것이다.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눈이 치워진 활주로 위로 올라 잠시나마 여유의 숨을 쉰다. 각자의 삶의 단계에서, 각자의 이유로 비행을 즐긴다. 가족과 함께 이곳에 온 사람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온 사람들. 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그 미소가 모일 수 있는 이유가, 결국 한 사람의 손끝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 나는 자주 놀랍다.
시동을 끄고 캐노피를 열면 “어땠어?”라는 물음이 들린다. “짱이었어!”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순간, 나는 그나마의 힘을 얻기도 한다. 언젠가 6개월 뒤에 비행을 배우고 싶다며 먼저 체험비행으로 온 사람은, 흔쾌히 점심을 함께하자고 했다. 떠나기 전에 계산까지 하고 갔다. 이런 장면들이 쌓여서, 하늘을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나는 계속 보게 된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미소가 어떤 것인지도.
나는 그를 기록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비행장을 운영하는 그의 하루는 늘 정신없고, 내 하루도 늘 정신없어서 결국 나는 그의 시간을 제대로 붙잡지 못했다. 다음 만남을 다시 기약하게 되었다. 그게 아쉬웠다. 다만 확실한 건, 그 사람을 가까이에서 볼수록 ‘그릇이 큰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돈이 많은 사람이 사람까지 아우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그를 통해 알게 되었다. 사람을 모으는 힘은 결국 규모가 아니라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도.
그곳도 결국 그가 사는 세상일 뿐이며, 우물 안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내 우물보다 넓은 곳으로 나를 잠시 데려다 놓았다. 그래서 나는, 더 큰 우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손에 쥐게 된다. 기회는 거창한 말이 아니라, 내가 보지 못하던 세계를 한 번이라도 보게 해주는 사람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보면, 꽃은 함께 핀다고 하여 옆에 있는 꽃에 기대어 피지 않는다. 꽃이 지는 것을 보면, 꽃은 함께 진다고 하여 옆에 있는 꽃과 함께 지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은 꽃처럼 지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그보다 더한 열정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고, 그 열정을 사람들을 위해 나눠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기록하려 한다. 꽃처럼 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 사람의 찬란했던 시절이 남아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