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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ol Oct 17. 2024

마지막 편지

떠나겠습니다



아침 공기가 차가웠다.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은 마치 오늘의 이륙을 축복하는 것처럼 맑았다. 잭슨은 거실 한편에서 딸이 웃으며 뛰어다니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오늘도 비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수많은 비행을 해왔지만, 이번에도 그의 가슴에는 늘 그렇듯 불안한 감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비행 사고 생을 마감한 동료들을 봐온 잭슨은, 비행 전 느껴지는 이 묘한 감정이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몇 년 전, 동료 조종사 브라이언이 비행 중 엔진 화재로 추락한 사고는 그에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날의 현장에는 그의 마지막 유언조차 찾을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이 불타버렸다.



그날 이후 잭슨은 매일 아침 비행을 떠나기 전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었다. 그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늘 편지를 남겼고, 이번에도 그가 떠나기 전 아침이 그랬다.



그날 아침, 잭슨은 조용히 주방으로 가서 아내와 딸을 위한 아침을 준비했다. 아침 식탁에 둘러앉아 웃으며 식사를 나누는 동안, 그는 딸의 그릇 아래에 조심스럽게 한 장의 편지를 남겼다. 그의 아내는 이미 이런 행동에 익숙해져 있었다. 잭슨은 종종 장난스럽거나, 때로는 진심이 가득 담긴 편지를 남겨두고 떠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는 그가 그릇 아래에 무언가를 두고 간 것을 눈치채고도 그저 미소를 지었다.



아내는 잭슨을 포옹하며 그를 보냈고, 그 후에야 편지를 펼쳐 보았다. 편지에는 늘 그렇듯 사랑의 말이 담겨 있었지만, 이번엔 무언가 다르다는 걸 느꼈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 그리고  딸에게.


오늘도 나는 비행을 떠나지만,


언제나


언제나 너희 곁에 있을 거야. 사랑해."



아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평소의 장난스러움 대신 진지함이 느껴지는 편지였다. 잭슨이 남긴 마지막 말이 그녀의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날 오후, 돌아와야 할 잭슨의 비행기는 돌아오지 못했다. 비행 중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그가 조종하던 비행기는 추락했고, 그는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비극적인 사고 소식이 전해졌을 때, 아내는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를 다시 꺼내 들었다.



‘언제나 우리 곁에 있겠다면서...’



아내는 그가 영원히 떠나버린 현실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잭슨의 마지막을 보내기 위해 모인 그의 동료와 상관들, 그리고 가족 모두는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가 떠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간이 흐르고, 아내와 딸은 그 편지를 수없이 다시 읽었다. 잭슨은 물리적으로는 그들의 곁에 없었지만, 그가 남긴 말들은 여전히 그들과 함께하겠다는 것이었다. 잭슨의 존재는 단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속 깊이 남아 있겠다고 했고, 그 편지는 그것을 증명해 주려는 듯했다.



잭슨은 비행을 시작한 이후로 언제나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항공기가 통제할 수 없는 순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였고, 마지막 순간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려면 추락 직전까지 민가가 없는 곳을 향해 항공기를 제어할 것이라 매 순간 다짐했었다. 결국 그는 그렇게 추락할 수 있었다...



잭슨은 만약 자신이 떠난다면, 아내와 딸의 곁에 머물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사후세계는 죽음이 끝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이어지는 곳이고 싶었다. 아니, 그러한 곳이어야만 했다. 죽음 이후에도 항상 아내와 딸을 계속 지켜보고, 그들을 보호하며 살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잭슨은 결국 죽음 앞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온 신은 그에게 물었다.



"여기에 남아 있을 생각이냐?"



잭슨은 고민에 빠졌다. 그의 마음은 아내와 딸을 떠나지 않고 계속 지키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남아있는 자신이 그들의 슬픔을 더 깊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자신이 영원히 그들의 곁에 머문다면, 그들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아내는 남편이 떠난 후에도 그를 그리워하겠지만, 잭슨은 시간이 지나면 저신의 죽음으로 그녀를 묶어두어 슬픔에 빠져 살지 않기를 바랐다. 아내가 잭슨의 마지막 편지를 다시 꺼내 읽을 때마다, 그 사랑이 남아있음을 느끼겠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자신을 잊고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가기를 바란 것이다.



잭슨은 신에게 답했다.



"떠나겠습니다."



결국, 잭슨은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 말이 자신에게 새로운 삶이 주어질지 아니면, 다시 태어나지도 못한 채 영영 눈을 감은 상태가 될지 죽음 이후에도 앞으로의 상황은 여전히 예측하기 어려웠다. 신에게 묻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럴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그는 그냥 그렇게 결정하였다.



잭슨은 그의 마지막 선택에 후회를 남기지 않았다. 그 자신도 아내, 그리고 딸과의 삶을 살아내면서 충분히 행복했기 때문이다. 잭슨은 그곳에서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삶 마지막을 기꺼이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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